성령세례: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공중에서 “방언으로 말하 는 것”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회 Q & A 2018. 8. 12. 03:23

성령세례: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공중에서 “방언으로 말하

는 것”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또한 신자의 개인 기도 생활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신약 성경에 의하면 알지 못하는 방언에는 네 가지 사용 혹은 목적이 있습니다. 

(1) 성령 세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사도행전 2:4; 10:46; 18:6)"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2) 방언이 통역될 때에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로서 (고린도전서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3)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 하는 표적으로서 (고린도전서 14:33: 예언하는 자들의 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그리고

(4) 효과적인 기도와 찬양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로서 (고린도전서 14:2, 4; 14:18: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이 모든 경우에 방언은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목적은 다릅니다. 이러한 독특한 사용과 목적에 관한 오해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초기의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 성령님께서 나누어 주신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오늘날도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을 때 나타나는 똑같은 증거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들이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예배를 위해 교회에서 모였을 때 방언으로 말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증거를 가질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방언 통역의 은사가 함께 역사하는 것을 필요로 하는 공중에서의 방언의 은사를 행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12, 13: 그러므로 너희도 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처음에, 공중 예배에서 어떤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방언으로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성령에 감동을 받아 그 방언의 해석을 말합니다. 이 영역에서 역사하시면서, 성령님은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을 마련해 줍니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의 목적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고린도전서 14:2-1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개인의 경건의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또하나의 사역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영적 생활을 매우 부유하게 만든다고 증거합니다. 성령님이 예배와 사랑의 영광에 넘치는 표현 가운데 인간의 영혼을 북돋우면서 지성의 한계는 극복됩니다. 제한된 어휘와 영혼의 감정과 관심을 표현할 수 없는 무능함의 곤혹함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언어가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올 때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이, 시간과 영원이, 하나님과 인간이 예배의 영광에 넘치는 행동을 통하여 모두 함께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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