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지체 사역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2018. 9. 6. 01:24그리스도의 지체 사역
하나님의 성회의 근본진리에 대한 성명의 첫번째 조항은 성경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있는 성경은 하나님에 의하여 축자적으로 영감되었으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며 무오하고 권위 있는 행위와 믿음의 규범이다.”(딤후3:15-17, 벧1:21, 살전2:13) 이러한 원리를 고수하는 교회나 개인은 안전한 기초 위에 있다. 이것으로부터 이탈될 때에는 언제든지 그 결과는 실패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믿음과 행위의 권위있는 규범으로 여겨야 하지만 특히 부흥운동이 확고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흥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자주 교회에게 무시되고 있는 진리에 대하여 상기 시켰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극단적인 곳으로 나가기가 쉽다. 어떤 사람은 부흥의 교리를 거부할 것이며 또 어떤 사람은 지나친 열심으로 성경의 가르침의 범위를 넘어가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극단은 해로우며 그리스도의 대의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부흥의 결과로서 그 동안 강조 되어온 진리 중 “지체사역 ”(Body ministry)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불행이도 이러한 진리를 잘못 적용하거나, 주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극단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지체사역의 타당성
지체사역에 관한 진리는 원래 성경적이다.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교회는 사람의 몸과 비교된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과 그리고 동료 신자들과 가지는 살아있으며 친밀한 관계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엡5:30) 성경은 몸의 머리됨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엡4:15, 5:23,32, 골1:18) 몸은 하나이며 그것이 분리되어서는 안된다.(고전12:26, 엡2:16, 4:4) 그러나 몸이 하나인 반면 그 몸은 여러 지체를 가지고 있다.(고전12:14) 그리고 이 지체들은 서로를 돌본다(고전12:25,26) 지체들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사역하며(엡4:15,16) 그것을 보전하며 섬기는 것을 추구한다.
비록 몸의 지체들이 다르며 직분, 사역, 기능에 있어서 다르다 할지라도(롬 (12:4) 여전히 몸의 일부이다. 지체들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다.(고전12:18) 우리가 지체사역에 대하여 말 할 때는 이에 대한 교회의 전 사역을 생각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돕기 위해서 교회에 주신 사람들의 사역을 포함하는데 이들의 사역의 실제이다. 즉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엡4:7-16참 조) 그것은 또한 모든 신자들을 포함하는데 각각의 신자는 성령의 은사나 혹은 영적 사역의 다른 모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어떤 구절에서는 지체 관계에 대한 언급이 빈약하지만 지체사역이 다음과 같은 상호 인격적 기능을 포함 하는 것은 명확하다. 즉 위로와 격려하는 것(고후1:4, 살전4:18, 5:11), 권고하는 것(히3:13, 10:25), 기도하는 것(엡6:18), 사랑하는 것(요일93:23), 대접하는 것9벧전 4:9),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하는 것(벧전4:10), 충고하는 것(롬 15:14, 골3:16)등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에 관하여 많은 가르침을 제공하고 있지만 개념의 양극화, 강조, 실시 등이 때때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한 극단은 몸의 지체들에 의한 표현과 참여를 제한하는 경향이 있고 반면에 다른 극단은 성령의 참된 움직임보다는 인간의 개성과 지도에 의존하는 인위적인 참여를 개발하는 경향이 있다.
지체사역을 제한하는 것의 위험성
교회가 마땅히 조심해야 할 위험성들 가운데 하나는 신자들의 사역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몇몇 영역에서 그리스도 몸의 모든 지체들로 하여금 섬기고 표현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성령의 나타남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어떤 사람들은 공중 예배 때 은사를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이것은 지체들이 유용한 기능을 완전히 거부당하는데까지 이르는 극단으로 나갈 수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조직을 유지하는 데에만 너무나 많은 정력을 낭비한다. 목사들이 모든 사역을 감당하고 대부분의 지체들은 소극적이다. 장려하는 강조점은 지체들의 영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너무나 많은 활동들이 세속적인 마음을 향하여 돌려졌다. 때대로 그냥 계속되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경향도 있다. 원대한 프로그램에 고정되는 것은 개인의 창조성을 대신하고, 정통은 현실을 대신하게 된다.
지체사역을 남용하는 것의 위험성
지금은 성령의 바람이 자유롭게 부는 시대이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신다. 이것은 많은 교회들과 교회의 지체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부흥 이전의 조건을 돌아보면서 영적인 생명력이 없는 것에 대하여 조직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교회 조직에 대한 환멸 때문에 조직된 교회나 교파적인 교회를 피하고 그러한 조직을 한쪽에 젖혀두는 경향이 있다. 가라지를 태우려는 열심 때문에 알곡까지 날리게 된다. 전통은 신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주류에서 벗어난 소위 지체사역의 접촉을 추구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그것들은 이 나라의 이쪽에서 저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태이므로 이러한 변칙적인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쉽지 않 은 일이다.
예를 들면 어느 지역에서는 조직적인 예배를 위하여 면밀하게 준비하는 것 대신에 소위 지체사역이 기다리는 형태의 모임(waiting-type meeting)을 연습하는 것으로부터 개발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예배시에 언어적인 은사가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다. 아직도 어떤 사람은 모임이 있을 때마다 비록 지도자가 그룹 중에서 개인들에게 요청해야 하지만, 성령의 모든 은사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때때로 사람들은 지도자에 의하여 개인들에 관한 소위 예언을 하도록 지시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지체사역의 다른 형태로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경험과 잘못을 고백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자기들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상호 간의 관계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직접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 성경적인 민감도 훈련 기술(sensitivity-training techniques)에 근사한 때가 여러번 있었다. 아마 성경에서 가장 유감스럽게 벗어난 것들 중 하나는 목사의 지도력과 조직 그리고 보다 조직화된 예배를 거부하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의 주신 목회의 은사(엡 4:11)를 거부함으로써 이러한 강조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성경적인 가르침과 성경적인 경험을 유지하도록 도우려는 다른 신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 떨어져 나가고 있다.
지체사역에 있어서 균형의 필요
잘못된 것을 다루는 일 중에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진리를 떠났거나, 명확히 부정하는 경우가 아니라 진리의 어느 관점을 부적당하게 혹은 지나치게 강 조함으로써 생기는 경우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우려고 시도하는 지도자들은 성령의 사역을 반대하는 것처럼 자칫 오해받기가 쉽다. 문제가 존재하는 곳에서 신자들은 이러한 자세를 보이는데 이러한 자세는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지체들에게 예상되는 것이다. 바울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 안에서 관용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의 가치 있는 특징이라고 지적하였다.(엡4:1-3).
하나님은 그의 목적에 따라서 교회 안에 목사의 은사를 두셨다.(엡4:11-16). 만일 양이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고루 전반적으로 공급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 더욱이 하나님의 양떼는 반항적이고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목자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가운데 행동하는 제멋대로 구는 사람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목사-교사 직분에 대하여 존경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만일에 소그룹 개념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까지 목회사역이 연장될 수 있다면 목사의 역할은 무엇이며, 교사의 역할은 무엇이겠는가? 신약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지도자라고 명확히 가르친다. 그들은 독재자가 아니라 종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시되거나 제가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신자들이 주 안에서 그들 위에 있는 자들을 존경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친다.(살전 5:12,13, 딤전5:17-19, 히13:7,17)
우리는 교리적인 탈선을 피하기 위하여 또한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순수한 진리가 때때로 남용되어진다. 성경은 항상 모든 관계에서 믿음과 행위에 대한 권위여야 한다. 우리는 몸의 각 지체가 교회성장에 있어서 채워야 할 역할을 가지고 있음을 성경이 가르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남용이 존재할 때 목사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교회 봉사를 조사해야 하며, 이러한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잘못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적절한 가르침을 제공해야 하며 그들의 봉사가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과 일치하도록 성경적인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에 제기된 그리스도 몸 안에서의 목회의 정당성 여부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지체들이 교회 안에 두어진,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된 지도력의 한계를 넘어서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것이 조장되어서는 안된다고 생 각한다.
성경은 연합이 항상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가르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를 때까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기”(엡4:3,13) 위하여 모든 부분에 대하여 성실한 노력이 있 어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며 기능을 발휘할 때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의 사역을 이루어 드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운동(movement)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체 사역의 성경적 기능에 우리 자신들을 새롭게 드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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