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2018. 12. 3. 17:33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용어는 성경과 현대 크리스찬의 언어에서 자주 발견된다. 아직 이 용어의 의미와 적용에 대한 불일치가 넓게 퍼져있다. 이러한 불일치 가운데 어떤 것은 중요하지 않은 점에 대한 해석상의 단순한 문제인 반면, 어떤 것은 전통적인 복음주의와 오순절적인 믿음의 근본적인 교의에 도전하는 중대한 문제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성회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관심을 분명히 하는 것이 적절하다. 


나라의 언어학적 의미


히브리어의 말쿠트(malkuth)와 헤라어의 바실레이아(basileia)의 원래 의미는 왕의 권위, 통치 혹은 지배 등이다. 나라의 영토, 국민, 경영은 부차적인 의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지배 범위이다.(시 22:28 참조)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과 그의 권위에 대항하는 우주적인 반역에 참여하고 있다.(요일 5:19, 계 11:17-18) 믿음과 순종에 의해서 사람은 그 반역에서 돌아서고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며 나라와 그 경영의 일부가 되다. 나라에 사람이 참여하는 것은 자원해서 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든지 안하든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이다. 


오직 하나님 나라가 있으나 성경에는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 즉 천국, 하나님 나라, 인자의 나라(마 13:41, 한글 번역에는 “그 나라”로 되어있음:역자주) 아들의 나라(눅 22:30 한국 번역에는 “내 나라”로 되어있음:역자주),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엡 5:5), 우리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계 11:15) 등으로 표현되어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구약에서 “여호와의 나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말쿠트 야웨(malkuth yahweh)라고 하는데 구약에 한번 나온다(대상 28:5) 물론 지상의 영토 혹은 소유지에 대한 말로써 “나라”라는 말은 많이 나타난다. “주권 혹은 지배”는 자주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의 개념에 대한 번역이다.(시 22:28 45:6, 66:7, 103:19, 145:11-13, 대상 17:14, 29:11) 구약 전체를 통하여(특히 시편과 예언서) 하나님의 개념은 그의 피조물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명백하게 표현되어있다. 비록 구약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왕되심이 분명히 나타나 있지만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가 장래에 성취 될 것에 대한 강한 강조도 또한 나타난다. 이러한 예상은 예수의 초림과 재림과 관련된 메시아적인 기대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9 시 9:6,7, 11:1-12, 24:21-23, 45:22-23, 슥 14:9) 단 4:34 은 하나님의 통치를 “영원한 권세”이며 “대대에 이르는 나라”로 묘사하고 있다. 


신약에서 나타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개념이 구약에 스며있는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덧붙여진 의미와,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서 중요성을 취한다. 예수의 사역은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4:17, 막 1:15)는 선포와 함께 시작된다. 예수께서 구체적으로 천국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신 적은 없지만 그는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셨고 (마 13 장, 막 4 장), 그의 사역에서 천국의 권세를 보여주셨다. 예수께서 그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천국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다.(마 10:7, 눅 9:2, 10:9,11) 예수 그리스도를 주(Lord)로 묘사한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임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천국이라는 단어의 다양한 문맥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 통치는 ①사람들이 지금 들어가는 왕국 혹은 영역이며 ②시대의 마지막 의인들이 들어가는 장래의 종말론적인 질서로 보여지고 있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는 현존하는 실재이며 장래에 성취될 약속이다. 천국은 성령에 의하여 예수의 인격과 활동으로 지상에 이미 임하였다. 그러나 충만한 천국은 이 시대의 마지막에 있을 최종의 종말론적인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 


현재 천국의 상태


예수를 따르던 몇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로 생각한 것”처럼 (눅 19:11) 오늘날도 어떤 사람들은 크리스찬들이 지상통치에서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로 안내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어느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인지 질문했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고 대답하셨다.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자 하시는 분이 지상에서 그의 구속사역을 완수하고자 하셨기 때문에 회복될 하나님의 통치는 곧 현실로 나타날 것이었다. 사단의 지배를 무너뜨리는 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오늘날 구속사역은 완성되었으나 궁극적인 천국의 실재는 한정 되어있다. 현재 천국의 권세는 늙는 것이나 죽는 것을 막지 않고 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이 주권적인 활동이나 신자의 기도와 믿음의 응답으로 자연법칙을 파기하시지만 천국은 여전히 연약한 인간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다. 교회는 주님의 재림 이전에 세상을 최종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의로운 정치적 및 사회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천국이 주로 힘쓰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고 있는 각 사람들의 영적 변화이다. 천년 왕국과 천국의 궁극적 도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눅 21:31) 천국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그것을 현재적이며 또한 미래적이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사이의 시기는 (현재시대)천국의 권세와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권세 사이의 격렬한 대결로 특징 지워진다. 마귀와 하나님과의 싸움이 현 시대를 특징짓는다. 그것은 싸움의 시기이자 또한 성려의 시기이다. 신자들은 어두움의 세력을 대적해야 한다.(엡 6:12)


우리는 이 싸움에서 와전하고 즉각적인 성공을 보장받고 있지 않다. 질병, 죄 억압 혹은 귀실들림에 대한 승리는 현재의 천국의 권세와 앞으로 다가올 최종적인 승리와 부활에 의해서 확인될 승리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질병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리도록 부름 받았으나 우리는 우리가 기도해준 모든 사람이 다 낫지 않는 현실에 부딪친다. 우리가 모든 가능한 방법을 다하여 질병에 대항하면서도 우리는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목적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눈에 띄는 승리에 즐거워하며 어떤 사람이 치료받지 못했을 때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우리는 악에게 지지 아니하며 현질서의 투쟁에서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모든 요구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할 때에도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아니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생활의 본질은 어두움의 세력에 대항하여 움직이는 것이며 완전한 구원은 항상 가능하지만 매 순간마다 즉각적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인식하는 것이다.(롬 8:18-23 참조)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히 11 장, 행 12:2, 고후 11:23-12:10) 미래로 연기된 구원을 바라보며 고난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였다. 우리는 악의 파괴행위를 방치하지 않으면 우리는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현 시대에 천국의 도구로서 우리는 충성스럽게 악과 고통에 대항하는 싸움을 싸울 것이다. 


성령과 하나님 나라


오순절 주의자로서 우리는 천국의 시작과 진행하는 사역에서 성령의 역할을 인정한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 성령이 임사셨다.(마 3:16, 막 1:10, 눅 3:22)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그의 권세있는 활동은 병든 자를 치료하고 죄 가운데 있는 남자와 여자를 영적으로 회복시켜 주었다. 그가 세례받을 때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의 사역에서 의미있는 점이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광야에 가셨다.”(눅 4:1) 예수의 사역에서 성령의 역사는 천국의 출현을 증명하였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령의 역할을 묘사하였다. 구약 예언에 대한 성취의 부분으로서 그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고 말씀하였다. 천국의 권능은 십자가 부활과 승천에서 나타났는데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성령의 시대는 성령의 공동체인 교회의 시대이다. 교회를 통하여 성령은 예수 자신의 천국 사역을 계속하신다. 


미래의 실재로서의 천국


성경적인 은사, 기름부음 받은 말씀의 선포, 적합한 표적과 기사 등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 활동 중임을 나타내는 뚜렷한 표시이다. 사단의 왕국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에 의해서 이미 침략을 당하고 있다.(요 16:11, 골 1:13, 2:15) 그러나 사
단의 최종적인 멸망과 모든 악에 대한 완전한 승리는 미래의 종말론적인 성취에 속한 것이다.(계 20:10)

우리는 계시록 20 장에 묘사된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전천년설을 믿는다. 우리는 현시대의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다음에 일어날 성경 예언의 주요한 성취는 지상에서 교회가 휴거되는 것이다.(고전 15:51-52) 우리는 교회의 휴거가 임박하였으며(막 13:32-37) 대환란 전에 휴거가 있을 것이며 (살전 4:17-18, 5:9) 그것이 하늘과 땅의 표적들이 이 시대의 끝이 가까이 옴을 나타낼 때(눅 21:25-28) 우리가 바라는 “복스러운 소망”(딛 2:13)임을 믿는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들의 육체적인 휴거와 이어서 천년동안 이 땅을 다스리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그의 성도들과 함께 가시적으로 다시 오시는 것을 포함한다.(슥 14:5, 마 24:27,30, 계 1;7, 19:11-14, 20:1-6) 사단은 반역하고 타락한 이후 처음으로 결박당하여 무력하게 될 것이다.(계 20:2) 이 천년왕국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가져오고(겔 37:21-22, 습 3:19-20, 롬 11:26-27) 인간의 타
락 이래 처음으로 우주적인 평화를 실현하게 될 것이다.(사 11:6-9, 시 72:3-8, 미가 4:3-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시대가 끝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의 나라에 불러들이실 것이며,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11:24-26)

천국과 교회

하나님 나라는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머리인 영적인 몸이다.(엡 1:22-23, 골 1:18) 그것은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것을 데려가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었던 사람이나, 믿을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가 존재하기 전에도 있었고 교회의 사역이 완성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현 시대에는 하나님 나라가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고 있다. 교회가 천국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할 때“(마 24:14) 마지막 때의 극적인 사건이 시작될 것이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교회를 포함한 그의 영원한 나라를 영광 가운데 다스리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들

현재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들은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나도 아니며 같지도 안을 것인데 이 세상 나라들을 “우리 주의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된다.(계 11:15) 하나님 나라는 현재의 정치제도 안에서 움직여 나가지만 이 정치제도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신자들은 천국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들어가서 각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비록 하나님 나라가 현재의 정치적인 실재는 아니지만 천국의 시민은 그 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 모든 인간의 정부는 어느 정도 악한 자의 영향 아래에 있지만(단 10:13,20, 요 12:31, 14:30, 엡 6:12) 성경은 정부가 악한 자를 벌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것이라고 가르친다.(롬 13:1-7) 정부의 권세자들은 그들이 그것을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하나님의 종들이다.(롬 13:6) 정부와 사회에서 발견되는 정의와 예의에 대한 이상들은 이 세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유산이다.(롬 1:20, 2:14) 그들이 반항적일 수도 있으나 세상 나라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대하여 책임이 있으며 불의와 사악함에 대하여 밝히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야 될 것이다. 

성경은 사회의 구족 속에 침투된 사회악과 싸우는데 있어서 크리스찬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명백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으나 진실한 신자들은 사용하는 수단에 있어서 달라야 할 것이다. 크리스찬들은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마 5:13,14) 그들은 가난한 자와(약 1:27, 2:16) 억울한 자(약 5:4-6)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불의한 법을 공격하며(사 10:1,2), 공의와 선을 추구해야 한다.(미가 6:8, 암 5:14,15)

세상의 나라들은 사단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요 12:31, 14:30) 그리스도만이 악의 권세를 초자연적이며 대대적으로 멸망시킬 것이다.(단 2 장, 계 19 장 참조) 현재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자랑하는 좋은 구조일지라도 결국 보다 나은 천국 통치를 이루기 위하여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세속적인 신권정치나 혁명적인 의견에 근거하여 과격한 문화 변혁을 꾀하는 청사진이 아니다. 그 대신에 그것은 이간의 인격과 삶을 급격하게 변화시킨다. 하나님 나라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기준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과 여자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는 역사의 흐름을 간섭한다. 이 과정을 메시야의 초림으로 시작되었으며, 교회시대를 통하여 진보되었으며 그의 재림을 통하여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안에 있지만 이에 속해서는 안된다.(요 17:11, 14:16) 롬 14:17 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의 삶에서의 하나님의 통치)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됨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관점

적극적이 사고방식이나 적극적이 고백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성경적인 실재를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천국의 영광이 임하도록 주장하는 것을 여기서 잘 깨닫고 그것이 진실된 크리스찬들을 오도하며, 혼동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천국의 건강과 번영을 소유하고 있다고 단순히 고백한 보상으로서 그 것들이 임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단순한 의미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신자들은 그들의 “신적 권리(divine right)”를 주장함으로써 그들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작은 신들(little gods)"이라고 하는 신학적 주장은 명백하게 성경적인 진리와 모순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다고 약속하셨지만(빌4:19) 우리의 물질적인 탐욕을 채우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고난과 십자가를 지는 것과 자기부정과 같은 중요한 성경적이 주제를 깍아 내리거나 파괴하는 어떠한 가르침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크리스찬들에 대하여 우월한 태도를 취하게 하는 가르침은 하나님께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을 아시며 공급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야 할 것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6:25) 생활의 필수적인 것들로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믿음이 적은 것을 나타낸다. (마 6:30) 그렇다면 호화스러운 생활에 마음을 빼앗기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느끼시겠는가? 만일에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는다고 약속을 주장함에 있어서 물질적인 소유에만 관심을 집중한다면 우리는 먼저 구해야 할 하나님 나라에 앞서 이러한 것들을 구하는 것이 된다.(마 6:33)

나라가 임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6:10) 천국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있다. 천국은 사단의 영토를 침범하였으며 최종적인 승리를 확신시켜 준다. 천국은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치료를 받거나 건짐을 받거나 접촉이 될 때 얼마간 임한다. 그러나 장래에 모든 악과 반역이 제거될 때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야 말로 크리스찬들의 뜨거운 소망이다. 그러므로 제자들과 함께 우리는 현재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강림하시는 것 즉 교회의 휴거는 영원하고 완전한 천국의 완성과 실재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천사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계 11:15)라고 선포할 것이다 사랑받는 계시자 요한과 함께 우리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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