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성령론_ 성령의 은사
성인성경학교 2024. 10. 13. 11:54성령론 Pneumatology_ 성령의 은사 (고린도전서 12장 1-11절)
(고전 12:1) 형제들아 신령(神靈)한 것(spiritual gifts)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새번역)_ 형제자매 여러분, 신령한 은사들에 대하여 여러분이 모르고 지내기를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모르고 지내기를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
얼핏 보기에는 참으로 온건한 권면의 글로 보입니다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씀은 이중부정적 표현으로 강한 긍정을 표현방식입니다, 이 표현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요구하는 강한 힐책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이중부정의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전체 고린도서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선교를 시작한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당시 고린도 신자들 중에는 의붓 어머니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이를 방관만 하고 있었고 (고린도전서 5:1-13), 어떤 교우는 자유를 구실 삼아 창녀와 관계를 맺었고 (고린도전서 6:12-20), 또 성행위라고 하면 무조건 죄악시 하는 극단적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7:1-10).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결혼, 이혼, 독신 등 성윤리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교우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교도 법정에 가서 소송하는 문제 (고린도전서 6:1-11),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 (고린도전서 8:1-11), 예배후의 성찬으로 먹는 친교 음식에서 부자들은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배불리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은 사례도 있었기에 올바른 성찬례를 가르쳐 주고 (고린도전서 11:17-34), 그 외에도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고린도전서 14장), 부활 신앙을 부인하는 (고린도전서 15:12) 사례를 그리스도 부활의 근거로 삼아 주장하며 가르치는 내용이 고린도전서 전체 내용입니다.
이와같이 고린도 교회에 만연한 문제에 관한 교회의 질문에 사도바울이 보내는 답변 형식의 권면이 고린도 서신서로 12장이 성령의 은사와 열매에 관한 답변입니다.
모두가 방언하고 모두가 예언하며 모두가 방언통역하는 은사가 흘러 넘쳐서 문제가 되는 고린도 교회에 사도바을은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은사론을 시작하는 12:1절에서는 이중 부정을 사용하며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권면으로 경고합니다. 사도바울의 권면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지 14:38의 마지막 권고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배척받고 구원에서 제외 될 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신령神靈이라는 말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하지 않고 기독교에서 쓰고 있습니다. 신령하다' 는 단어는 우리 한국 기독교인만 가지는 특별한 정서가 들어간 것입니다. 결코 성경적으로 마땅한 표현은 아닙니다. 우리 개역성경이 번역이 되면서 그 당시의 한국의 사상이 성경에 들어온 것으로 여겨집니다.(#용한 점장이, 신령한 산신령)
영어성경에서는 명사로 spirit(영, 심령) soul(혼, 목숨) Spirit(성령님) the Holy Ghost(성령님)이고, 형용사적으로는 spiritual(영적인) 이란 단어로 쓰입니다. 귀신은 모두 마귀(devil)이며 the devil(마귀)은 사탄, 루시퍼를 가르키는 영어 단어입니다.
성령론_영성이란 무엇인가? 에서, 영성(Spirituality): 신령스러운 품성이나 성질, 또는 정신적 경향, 영어 설명으로는 property or income owned by a church 교회가 소유한 수익이나 속성이라 또한 ‘영혼의 품질’, ‘영혼의 성향’ 혹은 ‘영적센스’라 말씀드렸습니다.
영성이라는 단어에 속한 ‘영’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나 헬라어로 퓨뉴마(Pneuma)로 부르는데 , 몇주 전에 살전 5장23절 말씀에서 상고하였듯이 ‘퓨뉴마’라는 의미는 창 1-2장에 나타나는 ‘숨, 호흡’을 의미하며 신약에 와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KJV | 개역개정(한문) | KJV | NIV | |
역대25:1 | 하프와비파와 심벌즈로 연주, 대언 | 神靈한 노래 | prophesy | prophesying |
역대25:2 | 왕의 명령에 따라 대언 | 神靈한 노래 | prophesied | prophesied |
롬 7:14 | 영적 | 神靈한 | spiritual | spiritual |
고전 2:15 | 영에 속한 사람 | 神靈한 者 | he that is spiritual | spiritual man |
고전 3:1 | 영에 속한 자 | 神靈한 者 | you as unto spiritual | you as spiritual |
고전 9:11 | 영적인 것들 | 神靈한 것 | spiritual things | spiritual seed |
고전 10:3 | 영적 음식 | 神靈한 飮食 | spiritual meat | spiritual food |
고전 10:4 | 영적 그 [반석]은 그리스도 | 神靈한 磐石 | spiritual drink | spiritual drink |
고전 14:1 | 영적 선물 | 神靈한 것 | spiritual gifts | spiritual gifts |
고전 15:44 | 영에 속한 몸 | 神靈한 몸 | spiritual body | spiritual body |
갈 6:1 | 영적인 | 神靈한 | spiritual | spiritual |
엡 1:3 | 영적인 복 | 神靈한 福 | spiritual blessings | spiritual blessing |
엡 5:19 | 영적 노래 | 神靈한 노래 | spiritual songs | spiritual songs |
골 1:9 | 영적 깨달음 | 神靈한 智慧와 聰明 | spiritual understanding | spiritual wisdom |
벧전 2:2 | 말씀의 순수한 젖 | 神靈한 젖 | the sincere milk of the word | pure spiritual milk |
벧전 2:5 | 영적 희생알지 못하는 물 | 神靈한 祭祀 | spiritual sacrifices | spiritual sacrifices |
(고전 12: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새번역)_ 알다시피 여러분이 이방 사람일 때에는, 여러분은, 이리저리 끄는 대로,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끌려 다녔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말한 이유는 과거의 삶을 회상해 보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기 전, 이방인으로 있을 때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을’ 때입니다. 우상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바울이 우상을 언급하면서 ‘말 못하는’ 수식어를 굳이 붙인 이유는 ‘스스로 말씀하시는 성령님’과 대조함으로 주님을 영접하기 전과 주님을 영접한 이후의 삶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이번 우상이라는 단어를 대하며 이스라엘 여행 중에 보았던 우상들이 기억났습니다. 사도바울이 1차 선교 여행을 떠났었다는 이스라엘의 어떤 항구였는데 한국에서는 알지 못하였던, 요상한 동물의 모습들, 요상한 모습으로 조합하여 만들어 놓은 조형물들을 넓은 광장 주위의 한쪽에 모아 놓았습니다. 제 등의 어깨와 허리에 딱 달라 붙었을만한 고만한 싸이즈의 사단의 졸개같은 요상한 모습의 우상들, 선입감이 없이 보았더라면 오히려 아주 귀여운 모습의 형상이었을텐데, 저는 그 우상들이 보이는 순간, 느글느글하게 거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념품 상점에 들렀는데 우상 조형물에서 보았던 선과 굴곡의 모습인 십자가를 선물 용품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에게 주어 질 그 우상화 굴곡의 십자가 선물이 윤장로의 방해공작으로 무산되었음을 아는 교인들이 있는지요?
한국의 우상은 어떠한가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손바닥이 달도록 빌기만하면 소원성취를 하듯이 얼마나 많은 우상의 형상에다 운명을 맡기는 어리석은 민족이었는지요. 우리의 전통적 문화, 민간신앙?이라며 해외에 소개되는 대장군이라 불리는 동네 어귀마다 서있던 장승이 동네를 지켜 준다고 믿어놨던 민족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말 못하는 우상’에게 끌려다녔습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형상의 유, 무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 외에 문제 해결을 위해 답을 구하는 대상이 됩니다. 재물이나 가치, 욕망, 탐심, 무분별한 자식사랑, 사람도 포함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답을 줄 수 없는 우상에게 끌려다니지 않아야 하며, 오직 성령님이 이끌어 주시는 데로 따라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새번역)_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하고 말할 수 없고, 또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사역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과 구원한 성도를 실족하지 않도록 인도하여 재판장이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성령의 인도하는 사역을 두루뭉실 한마디로 성령의 견인이라 설명합니다.
a.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 과,
b. ‘구원한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 이와같이 성령의 사역이 두가지로 나뉩니다.
1. 인류 구원의 성령의 사역은 마가다락방의 보혜사 성령의 임재 사건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일어났던 성령의 사역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신으로 역사하시던 삼위이신 성령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던 구원의 역사입니다.
2. 구원받은 성도들을 재판장으로 오시는 재림 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제2의 보혜사로 오신 보혜사 성령의 사역입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바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불어 가는지 알 수 없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보혜사 성령의 사역입니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신대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성령론_ 성령의 은사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고전12장 전체를 축자적으로 돌아보면 구원받은 자에게 당연하게 나타나야 할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힐책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하며 성령세례 받고 성령으로 신앙생활 하면서도 이전에는 고전 12:3의 말씀을 잘 받아 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없다는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야하면 내가 아는 성령은 보혜사 성령뿐인데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못한다? 성령을 모르며 성령을 거부하는 장로교인들도 보혜사 성령이 도와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신다? 그러면 내가 아는 보혜사 성령과 장로교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령이 같은 성령이라는 말씀인가? 저는 그 당시에는 아마도 우리와 똑같이 구원받았다는 장로교인들을 향한 시기심을 품고 있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최근에 우리에게 대두된 하나님이 나만 사랑하시는 줄로 알았는데 나 말고도하나님이 끔찍하게 사랑하시는 다른 성도들이 너무 많아서 시기심이 발동되었다하는 그러한 문제를 그 때에 격고 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런데 제가 겪은 성령에 대한 문제들은 저의 성령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 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참후에야 알고보니 두리뭉실하게 설명하는 장로교회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없는 성령론과 보혜사 성령론만 가르치는 우리 교단 하나님의 성회의 가르침, 양쪽 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계에서 대두되고 있는 두가지 성령세례론.
a. 구원받음과 동시에 임하시는 삼위의성령하나님의 임재를 성령세례로보는 칼빈측 견해.
b. 구원받은 후에 임하시는 제2의 보혜사로 오신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를 성령세례로 보는 오순절 교회와 성령파 성도들의 견해. 두가지 입장의 견해입니다.
이전에 기독교 토론장에서 ‘ㅂ ㄷㄱ’라 하는 아이디의 기독교를 핍박하는 자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그러한 자가 있었습니다. 반기독교협회(반기련)의 수장이라 제가 공격하던 자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도 실족시키기 위하여 으르렁대며 찾아 다니는 사단과 같은 그는 지금도 여전히 제 꼬리를 물어뜯고 있습니다. 그의 기독교 설명을 보면 구름 위를 올려다 보며 설명하듯이 마치 뜬 구름을 잡드시 복음을 설명합니다. 왜 뜬 구름을 잡느냐? 첫째로 복음을 반대하는 자, 둘째로 복음을 모르는 자 이기에 그러합니다.
반기독교협회의 수장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왜 제가 뜬구름잡는다는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고전12장의 은사론을 시작하면서 reference로 참고하고자 인터넷에서 많은 글을 찾아 읽게 됩니다. 평소에도 찾아볼 때마다 재차 느끼게 되는데 칼빈측에서 설명하는그럴듯한 은사론에 관한 글들은 인터넷에 흘러 넘치는데 오순절측에서 설명하는 은사론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그러면 흘러 넘치는 칼빈측의 은사론의 가르침에 문제라도 있다는 말인가? 저쪽의 풍성한 가르침을 시기라도 하는 것인가? 저는 칼빈측의 정교한 정리된 정통 복음의 말씀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은사론에 관한한 장로교회의 기르침에는 강하게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첫번째로 그 가르침에는 성령을 거부하며 믿지 못함으로 인한 성령에 관한 무지에서 나오는 성령 반대자들의 글이기에 거부합니다. 두번째로는 성령을 거부하며 성령에 무지하므로 인하여 성령에 관한 뜬 구름잡는 엉뚱한 이야기로 은사론이 주종을 이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새번역)_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교회에는 각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4절에서 사용된 ‘은사’는 헬라어로 ‘카리스마’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카리스마란 ‘선물’이란 뜻 입니다. 즉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선물’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은사
인간의 재능이나 능력은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님은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들이 당면하는 여러가지 필요한 것들과 기회들 그리고 난관들을 직면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은사들을 주십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사실은 그것과 반대입니다. 기꺼이 하고자 하는 도구로서 우리들이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그리스도 주님께 드리며 우리들을 통하여 역사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우리들에게 은사에 대한 목록을 제시해 줍니다 (로마서 12:6-8; 고린도전서 12:7-11, 28-31, 13:1-3; 에베소서 4:7-12). 어떤 목록도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각 목록은 우리들에게 성령이 우리들을 위해 주시는 것에 대한 예를 보여주며, 각 은사는 다양한 표현을 가지고 있는 종류나 그룹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 은사들은 또한 신자와 성령이 함께 역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기 때문이며,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성령의 은사들을 사모해야 한다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11; 14:1).
에베소서 4:11-16 은 주님에 의해서 택함을 받고 그에게 잡힌 바되며, 그로 인하여 교회에 주어진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그리고 목사와 교사들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역 교회에 있는 사역자들이 아니라 모든 교회를 총괄하여 주신 그리고 교회에서 교회로 사역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역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모든 사역은 모든 사람들이 은사를 받고 예배와 영성과 성도의 숫자에서 지역교회가 성장하는데 공헌할 수 있도록 신자들을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발전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은사에 관하여 말씀한 모든 것들이 오늘날에도 그것들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의 여러 곳에서 적절한 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지체를 만드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이 땅에 완전한 나라를 회복하시기 전까지 그들은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의 지식은 불완전하고 우리들의 은사는 부분적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 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1 서 3:2).
로마서 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2:7-11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28-31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에베소서 4:7-12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4:1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고린도전서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요한 1 서 3: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고전 12: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새번역)_ 섬기는 일은 여러 가지지만, 섬김을 받으시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역사 학자들은 성령의 은사들이 초대 교회의 급속한 성장을 위해 중요했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그리스도 후에 3 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그 후에는 점차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때때로 부흥을 통하여 이러한 몇 몇 은사들이 회복되었으나 20 세기가 시작되면서 오순절 부흥이 일어날 때까지 그들은 모든 교회에서 무시 되었습니다. 이 부흥은 전례 없는 복음의 중대한 전진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남아메리카에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들은 다른 모든 종교와 기독교를 경이롭게 구별합니다.
(고전 12: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새번역)_ 일의 성과는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에게서 모든 일을 하시는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은 같고, 주는 같으며,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새번역)_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 주시는 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은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목록은 고린도전서 12:8-10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9가지 은사들은 성령께서 그 은사를 사역에 사용하시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보다는 지역 교회의 필요에 따라서 주어집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러한 은사들을 세 가지 그룹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은 가르치고 설교하는데 유용합니다.
둘째로, 믿음, 병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그리고 영들 분별함은 교회와 세상에 대해 사역하는데 유용합니다.
셋째로, 각종 방언 말함과 방언을 통역하는 것은 예배에 유용합니다.
성령의 특정한 은사
지혜의 말씀 -------------------------------------------
이 은사는 하나님의 가르침의 계시입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필요 또는 문제에 대하여 초자연적인 통찰력을 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으로 적용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명상이나 준비를 통하여 오는 것이 아니며 직접 성령님으로 부터 옵니다 (누가복음 21:13-15)"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성령님께서 지혜의 말씀을 나누어 주실 때 한정되지만 그러나 적절한 부분적 통찰력이 그 특별한 경우에 필요한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주어집니다. 그 은사는 우리들의 지혜의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지 않으며, 또한 우리들이 미래에 과오를 범하는 것을 방지하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단지 당면한 경우를 위해서 하나님의 무한한 창고에서 일시적으로 꺼내오는 것을 우리들에게 허락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그것은 사도행전 6:2-4; 15:13-21 에서와 같이 신자의 모임에 가르침을 줄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도와 스데반의 경우에서와 같이 (사도행전 4:8-14; 19-21; 6:9-10) 대적이 대항할 수 없는 지혜를 (누가복음 21:15) 줄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일이나 우리들의 믿음을 개발하기 위해서 인간의 지혜에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전서 2:5). 만일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그것을 구 해야만 합니다 (야고보서 1:5).
고린도전서 12:8-10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새번역)_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주십니다.
지식의 말씀 ----- -------------------------------------
이 은사는 복음의 진리와 기독교인의 그것을 응용하는 것에 있어서 신성한 통찰력을 줍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함으로 얻게 되는 것 그 이상을 줍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2).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또한 다른 사람의 계획이나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은밀한 지식의 부분적인 계시를 포함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고 믿습니다. 이것에 대한 한 예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5:1-10). 그러나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어디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것인지 혹은 어떤 사람이 무슨 병이나 무슨 죄 때문에 고통을 받는지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습니다 -
-- 비록 성령이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의해서 이러한 것들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고전 12: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새번역)_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주십니다.
믿음 ----- ------------------------------------------
은사로서의 믿음은 구원을 위한 믿음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 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이 했었던 것처럼, 그리고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적했을 때 엘리야가 했었던 것처럼 (열왕기상 18:33-40), 평범하지 않은 기회를 만나는 것은 기적적인 믿음입니다. 그것은 또한 멜리데에서 배가 파선되려고 했을 때 바울이 그랬었던 것처럼 (사도행전 27:25) 대화하거나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능력을 포함합니다. 그는 이러한 일을 자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4-6).
신유의(병고치는) 은사 -----------------------------------------
사도행전에서는 이적적인 병고침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을 받기 위해 주님께 돌아오는 계기를 주었습니다. “은사”와 “병고침”은 모두 헬라어 (신약 성경이 쓰여진 원어)에서 복수이며, 그래서 단 한가지의 병고침의 “은사”가 아니라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의미합니다. 병고침의 은사는 그 은사를 사용하는 사역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픈 사람 --- 그 은사를 받는 사람 --- 을 위한 것입니다.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사도행전 3:6) 라고 말했을 때, 그는 성령님이 그 나면서 앉은뱅이된 사람에게 나눠주기 위해 그에게 병고침의 특별한 은사를 준다는 것을 의미 했습니다. 성령은 베드로에게 병고침의 은사의 저장소를 그에게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침을 받은 각 병자를 위해 주님을 바라보고 새로운 은사를 성령님으로부터 받아야만 했습니다. 베드로는 또한 하나님이 치료자이시며 오직 그 분 만이 영광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사도행전 3:12-16; 비고. 출애굽기 15:26). 성령님은 또한 병자가 받아들이는 것을 돕는 믿음, 사랑, 그리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권면할 것입니다.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새번역)_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언을 말하는 은사를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십니다.
능력 행함 --------------------------------------------
이러한 전능하신 초자연적 능력의 행함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사탄을 패배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귀신을 쫒아내거나, 주위 환경을 변화시키거나,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오는 것과 같은 것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박수 엘루마에게 소경이 되는 심판이 내린 경우와 같은] (사도행전 13:9-11). 그는 이러한 일을 자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4-6).
예언 -------------------------------------------------
예언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은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언하는 자는 . . . 덕을 세우기 위해서 [영적으로 세우며 믿음을 개발하거나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에게 말하며 [인간, 남자와 여자], 권면 [믿음과 사랑으로 전진할 것을 일깨우며 도전하기 위해서]과, 안위하기 위해서 [소망과 기대에 대하여 갈채와 부흥, 그리고 권면하기 위해서] 입니다 (고린도전서 14:3-4). 이러한 것은 “교회의 덕을 세웁니다” (비고. 사도행전 15:32).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은사를 정기적으로 사용한 사람들을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어떤 신자라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의 모든 표현은 그것이 성경 말씀과 일치하며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해서 교회의 다른이들은 분변해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14:29).
영 분별함 ---------------------------------------------
영 분별함의 은사는 여러가지 모양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예언들을 “판단” 혹은 “저울질”하는데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사탄의 속임수로부터 우리들을 보호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해 보라고 경고하였는데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요한 1 서 4:1). 어떤 표현은 인간의 영으로부터 나오며, 어떤 것들은 악한 영으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각 사람 안에 있는 영이 무슨 영인가를 알리면서 돌아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은 그것이 필요할 때에 특별한 경우에 그러한 은사를 주십니다.
방언과 방언 통역 ---------------------------------------
방언은 하늘로부터 내린 성령의 지시에 의한 언어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말하는 사람에게 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고전14:2). 사람들이 방언으로 말을 할 때에, 성령님은 그들에게 기름 붓고 또한 그들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하여 영적으로 덕을 세웁니다 (강하게 하고 쌓아 올립니다). 이러한 덕을 세움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일어납니다. 그러한 덕을 세움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일입니다. #
성령님은 매우 다른 모습으로 신자의 교회에서 덕을 세웁니다. 모든 신자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방언은 반드시 통역이 따라야만 합니다 (고린도전서 14:4-5). 방언의 통역은 회중의 언어로 주어집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권면하고 그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도록 만듭니다. 통역은 한 마디 한 마디를 통역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것은 성령님이 말씀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분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은 어떤 번역을 함에서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시편 23:1 은 히브리 성경에서 단지 네 단어이지만, 그러나 킹 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아홉 단어로 되어 있고 뉴 인터내셔날 영어 성경에는 열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의 은사가 제일 마지막에 언급되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 목록에서 그 순서는 항상 똑같지 않습니다. 모든 은사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전서 14:18) 라고 말했기 때문에 방언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그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럼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것을 개인의 경건의 시간에 가졌습니다. #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왜 바울이 고린도전서 12-14 장에서 방언, 방언 통역, 그리고 예언에 대해서 신자들에게 덕을 세우며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예언이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면서 많은 주의를 주었는가 하는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일어나서 말을 했을 때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는 성령에 충만하여서 말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미리 설교를 준비하거나 개발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이 예언의 은사로 그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3000 명이 구원을 받았으며 교회에 더하셨습니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새번역)_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질문과 대답
1. 영적인 은사는 타고난 재능과 어떻게 다른가?
타고난 재능은 우리들의 조상에게서 상속받는 부분 중의 한 가지입니다. 그것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달렸습니다. 우리들이 그것들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수도 있으며, 또한 그것들을 무시해 버리고 상실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긴 하지만 그들은 성령의 감동과 능력으로 주어진 사역을 위한 은사들의 대용품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은사는 초자연적이며 성령님의 뜻과 결정에 따라서 성령님에 의해 분배됩니다. 그들은 우리들이 선택하는 대로 사용할 우리들의 소유물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성령님과 계속 접촉해야 하며 우리들의 자원을 그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특정한 경우에 필요한 은사가 무엇이든지 성령님이 나누어 주시는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사용하는가 하는 것은 성령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들이 초자연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성령님의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그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개성과 우리들의 어휘를 사용할 것입니다.
2. 오늘날 많은 영적 지도자들은 신자들이 지역 교회에서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영적 은사를 발견하도록 요청한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은사를 찾는 것은 적절한가?
고린도전서 14:1 은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필요한 것을 보게 되며, 우리들로 하여금 그 필요한 것을 만족시킬 은사를 사모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누구를 사용하시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아직도 성령님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모하는 마음을 보실 것이며, 사모하는 사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은사를 결정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작성하는 어떤 설문지는 사실은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이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을지라도 우리들에게 영적인 은사를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 이것들이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영적 은사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받으려고 선택만 하면 그것들을 자동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인가?
그가 누구를 사용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분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우리들 자신의 선택을 통하여 우리들이 그것들을 자동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정말로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에, 우리들이 성령님을 바라볼 때에 그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사모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4. 고린도전서 12:8-10 에 나열된 은사들만이 유일한 은사인가?
이러한 것들은 교회에서 필요한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소유한 것에 대한 훌륭한 예들로 보입니다.
로마서 12:6-8 은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 일, 성실함으로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그리고 긍휼을 베푸는 일을 보태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롬12:1-2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시간의 본문 고전12장 첫절에서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이중부정적 표현으로 강한 긍정식 표현방식을 사용하면서 까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 이 표현은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요구하는 강한 힐책의 말씀임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살펴보고자 하는 롬12장 2절에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별하도록 하라 -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도키마조'(*)는 '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말은 판단하거나 시험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하라"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라" 강한 명령 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2:3-10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6- 8에는 주의 몸된 교회에서 주의 몸에 붙어있는 각 지체로서 각자의 부르심대로 사랑으로 섬겨라.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할 구체적인 내용이 9절- 18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에 관하여는 (에베소서 4:7~16)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롬12장에서 좀더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6절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2장의 성령의 은사들 중에 유독 '예언'의 은사만을 롬12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예언의 은사만 은사이고 방언이나 다른 은사들은 은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까? 6절에서 8절로 보면 교회의 지체로서의 essential 하고도 가장 중요하고 필수의 은사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에 필수인 예언의 은사를 살펴봅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회의 목회자들 뿐 아니라, 모든 교회의 성령파 목회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목회를 하는데 필수인 예언의 은사를 주셔서 목회를 하게하신 것을 오순절 교인들은 모두 숙지하고 있습니다. 삼상10장에는 사울이 예언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부하들을 보내었드니 보내는 부하들마다 선지자 무리에 섞여서 예언하더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사울과 그의 부하들이 느닷없는 예언에서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파 목회자들은 모두들 예언의 은사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인데 그들 모두가 방언의 은사를 함께 동반한다는 사실입니다. 혹 예언이면, 이 예언의 은사안에 방언의 은사가 필수로 동반합니다. 모든 은사에는 방언의 은사가 필수로 동반함이 옳은 이해입니다. 사울과 그의 부하들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시니 그들이 느닷없이 예언을 했더라는 기록은 '사울과 그의 부하들도 방언을 하였더라' 로 말씀을 받으면 틀림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1장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사울과 그의 부하들도 방언을 하였더라' 라는 내용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변개치 못할 진리의 성령론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고린도전서 12:28 은 서로 돕는 일과 다스리는 은사를 보탭니다. 실제로, 은사는 서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의 은사는 그것이 표현할 수 있는 여러가지 다양한 표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은사의 목록에서 그것들의 다양함은 또한 이러한 은사들이 많은 은사들 중에서 몇가지 예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의 주권아래 성령님이 추가적인 은사를 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성경에서 언급한 은사들과 같은 종류의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상한 은사나 혹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않거나 신자들의 모임에서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은사를 주지 않을 것입니다.
5. 이적은 무엇인가? 이적, 표적, 및 기사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적”이라는 단어는 히브리 말과 헬라 말에서 세 가지 다른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표적”, “기사”, 그리고 “능력” (혹은 “능력 행함”)을 의미합니다. “능력”은 초자연적 자원 --- 하나님의 신성한 능력 --- 을 강조합니다. “기사”는 그들이 우리 인간의 능력과 자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과 그들이 우리 하나님의 경이로운 성품에 주의를 주는 것을 강조합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어떤 면을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이적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단지 우리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 비록 하나님이 그의 선하심과 은혜 가운데 그러한 것이 흔히 이루어 지지만
갈라디아서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 재능은 유전 및 훈련의 결과이며, 영적인 은사는 성령의 권능의 결과입니다. 2) 영적인 은사는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소유하지만, 재능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누구나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재능과 영적 은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재능은 전적으로 비영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지만, 영적인 은사는 이러한 과업들을 위해 집중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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