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령론_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이해
성인성경학교 2024. 9. 1. 00:0711. 성령론_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이해
요한복음 10:37-38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요한복음 10:37-38 해설
요한복음 10:37-38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분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믿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그분이 아버지의 일을 행한다면 그 일을 믿으라는 교훈을 전합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행동이 그의 말씀과 일치해야 믿음이 성립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행동과 일치하는 일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구절은 또한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독특하고 깊은 관계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도 예수님 안에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이를 깨달리라고 약속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불분명하지 않은 연합과 함께,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써 우리도 아버지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그의 말씀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과 일치하는 일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는 교훈을 전합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의 깊은 관계를 통해 우리도 아버지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알리며, 예수님 안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아버지의 돌보심과 인도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질문] 1)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공대를 졸업하고 신대원 진학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입니다.
카톨릭을 비롯해서 개신교의 수많은 교단에서도 정설로 인정하고 있는 삼위일체설에 대해서 막연히 옳겠구나 하고 인정하고만 있지, 사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막연한 이야기만 하고 있지, 아주 논리적이고도 정확하게 성경 구절들을 통해서 증명하는 부분이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면 이단이 될 정도로 기본적인 기독교의 교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이 사이트를 자주 애용하는 학생으로서 목사님께서 한번 정리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 주제넘지만 정중히 요청합니다.
삼위일체론을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는 어떻게 되며, 삼위일체론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그리고 삼위일체론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즉, 사도 바울이나 야고보, 베드로 등 초대 교회의 사도들 또한 삼위일체론을 (이론으로는 물론 아니겠지만) 알고 있었고 진리로 믿고 있었을까요? 구원에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성령님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셋이 하나이고 또한 셋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까?
[답변]
삼위일체에 관해서는 조직 신학 박사가 나서서 아무리 심오하고도 상세하게 설명해도 선뜻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신대원 입학을 준비하는 정도라면 믿음도 상당하고 이미 인터넷을 통해 조사도 많이 하고 관련된 책들도 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동의는 할 수 있는데 잘 이해할 수 없다고 이미 고백하셨듯이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흔히들 유추의 방법을 동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물이 액체와 얼음과 수증기의 세 가지가 될 수 있지만 본질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과 방불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런 유추로는 완전히 만족스런 설명이 되지 못하며 때로는 유추의 대상이 되는 사물의 이미지에 매이다 보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때도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신적 신비(Divine Mystery)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리적인 설명을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는 어그스틴에게조차 이런 일화가 전해내려 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한 신비를 곰곰히 생각하면서 바닷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개껍질을 갖고 노는 소년이 모래 구멍에 바닷물을 부어 넣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얘야! 지금 무엇을 하니?”라고 물으니까 “이 구멍에 바다를 쏟아 부어 넣으려고 합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내가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이것과 같구나. 바다와 같은 무한한 것을 나의 유한한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삼위일체는 단순 명료한 입장이 되어야만 이해도 되고 믿음이 더 견고해집니다. 비록 하나님의 삼위 일체성이 인간의 지성에는 혼동을 주나 그런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면 분명히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단순명료한 입장은 바로 성경의 기록으로 돌아가 그대로 이해하고 믿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지적대로 강력한 성경적 근거가 뒷받침 된 이해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1. 삼위일체론의 성경적 근거
삼위일체(Trinity)라는 용어 자체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대신에 성경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位格)과 하나의 실체(實體)로 존재한다고 증명하고 있는 것을 교리적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성경 66권마다 특정한 주제가 있지만 그중 한 권이라도 삼위일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설명을 해주면 이해가 좀 더 쉽겠건만 그렇지 못하고, 성경 곳곳에 산발적으로 그것도 다른 사건이나 교리를 설명하면서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신약 성경에는 그 사상이 확연하게 나타나 있는데 이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신약 시대에 오셨기 때문에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물론 구약에도 신약 같이 직접적인 언급은 적지만 분명한 증거들을 아주 많이 내포하고 있습니다.
1.1. 구약의 증거
구약의 대표적인 구절로는 창1;1, 1:26, 신6:4를 들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여기서 하나님(Elohim)은 복수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전부 ‘우리’라는 복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해 신약에선 “그(예수)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다”(골1:15,16)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또 창조 전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1:2)고 증거하고 있기에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합동 사역임에 틀림없었고 또 그래서 ‘우리’라는 복수를 사용한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라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신앙고백에 사용된 히브리어 하나(‘에하드’)는 “통일된 하나”라는 뜻으로 “하나로 일치된 복수”를 의미합니다. 나아가 ‘오직’은 상대적인 단일성이 아니라 절대적인 유일성을 의미합니다.
이 외에도 구약 성경에는 수도 없이 ‘하나님의 신’(성령)과 ‘여호와의 사자’(많은 경우 성육신하기 전의 성자)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절대적 유일신 체계 같았던 구약 시대에도 사실은 위격이 다른 세 하나님이 하나인 하나님 안에서 통일되어 있었습니다.
1.2. 신약의 증거
신약의 삼위일체에 대한 구절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삼위를 한 절 안에서 분명하게 순서대로 직접 언급한 구절(trinitarian formula)들입니다.(마28:19, 고후13:13, 벧전1:2)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9)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더러 새롭게 회심한 자들을 성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했습니다. 한 죄인의 구원이 삼위 하나님의 합동 사역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저자 마태는 ‘이름’을 단수 명사로 기록했습니다. 당초에 세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진 탓도 있지만 제자들이 삼위의 일체성에 대해 확신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13;13) 바울 사도는 파당이 생겨 분열된 교회에 성삼위의 이름으로 화합을 명하면서 서신을 끝맺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은혜를 가장 먼저 강조했습니다. 인류의 구속을 위해선 성자의 사역이 핵심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또 용서 받은 죄인들이 모인 교회가 하나를 이루어 성숙해 가기 위해서도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이 실천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에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벧전1:2) 각지에 흩어져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더러 삼위 하나님이 이루신 사역을 기억하며 믿음 위에 견고하게 서라고 합니다. 성부는 거룩한 예지에 따라 구원 받을 자를 선택 했고, 성자는 십자가에 그 택하심을 입은 죄인을 대신하여 피 흘려 구원을 이루었고, 성령은 이제 용서 받은 죄인이 오직 주께 순종하도록 하여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삼위일체에 대한 두 번째 유형은 이어지는 몇 절에 걸쳐 삼위 하나님을 평행하여 한 묶음으로 표현한(triadic form) 구절들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엡4:4-6)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12;3-6) 두 구절 다 삼위 하나님이 일체이듯이 교회 안에서도 모든 성도들이 하나를 이루라고 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분명한 평행은 이루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삼위를 다 언급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는 장면(마3:3-17, 막1:9-11, 눅3:21-22)입니다. 셋 다 성자가 침례를 받을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고 하늘에선 성부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 사도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4-6)고 했습니다. 죄인을 속량하여(성자의 사역), 성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기 위하여(성령의 사역) 성부 하나님이 성자와 성령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이런 유형의 표현들로는 살후2;13-15, 딛3:4-6, 유20,21을 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 유형으로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고별 강화를 하면서 삼위 하나님의 일체되심을 명확하게 언급하신 것이 요한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참고로 요한복음은 거의 전부가 예수님이 당신의 신성과 성부와 성령과의 관계에 대해 직접 설명한 내용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14;16) 성자가 성부에게 구해서 자신의 죽음과 승천 이후에 성령이 강림하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의 원어는 ‘서로 다른’(different each other)의 의미가 아니라 ‘또 하나의’(same but another)의 의미입니다. 성자와 완전히 동일하지만 위격만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영원토록’ 신자들과 함께 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성령은 성자와 함께 성부와 동일한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라 하였노라.”(요16:13-15) 삼위 하나님이 일체일 뿐 아니라 사역에서도 반드시 서로 협동하여 합의한 일만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대로 신구약 공히 삼위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하시고 합동해서 사역을 하시되 모든 본질과 권능과 속성에서 하나도 차이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을 살펴보면 “아들과 성령이 하지 않는 일은 하나님이, 하나님과 아들이 하지 않는 일을 성령이, 성령과 하나님이 하지 않는 일은 아들이, 이렇게 서로 구분되는 위격들처럼 행동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삼위일체란 용어는 성경 안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십니다. 즉 하나님은 본질상 하나이시나, 이 한분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3인격이 각각 다르며, 역사는 함께 하시는 한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서 인격(person)이란 위(位)를 말하므로 세 인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어떻게 한 하나님이 셋으로 나누어지는가 하고 의심이 생기는 사람이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들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깨닫는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러나 참으로 신비하더라도 얼마든지 믿어진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삼위일체 만큼이나 흥미롭고 확실하며 은혜가 넘치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피츠버그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단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이해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교회에 참석하기 전에도 모든 공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겉으로 보이기에는 믿음이 좋은 신실한 집사로 보였을 시절입니다.
처음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 설명을 듣는 그 순간에 꿀떡처럼 말씀을 받아 들입니다. 그 순간에는 삼위로 계시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그대로 믿게 되며 심령이 은혜로 충만해 집니다. 그런데 예배를 폐하고 문간을 나서면서 어! 삼위일체 하나님이 무엇이었더라 까맣게 잊어버리며 오리무중으로 기억이 없습니다.
몇 년인가 시간이 지나며 두번 째로 또 상세한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하여 설명을 듣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어제 공부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하나님을 거울을 보듯이 직접 본적이 있습니까. 제한된 육신을 몸을 입고있는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이 어찌 이해가 되겠습니까
우리교회에 참석하면서 제자훈련반에서 세번 째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좀더 자세히 공부 합니다. 그 때에는 성령세례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며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삼위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이해되는데 마치 필름처럼 한 컷으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안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위로 계신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완전한 인격체로 각각 지,정,의를 갇고 계신다. 성부로 부터 성자가 나오고, 성자로부터, 성령이 나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삼위로 계신다. 이와 같이 계속하여 삼위의 하나님이 사역으로까지 이해되며 비데오 컷이 연결되어 활동 사진이 돌아가듯이 연결되며 좀더 유연하게 하나님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 단계를 제 방식대로 일부 설명드렸는데 이 설명은 말씀에 의한 정통 기독교의 기본교리 입니다.. 이 정도까지만 이해하고 믿기만 하더라도 횡횡하는 이단의 꼬임에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고 삼위하나님으로 역사하시는 구원의 역사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성령하나님의 사역에 눈이 뜨게됩니다.
인터넷에서 널리 알려진 신학박사의 블로그를 써치하면서 신학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가감하여 설명하는 삼위일체론을 접합니다. 이렇게 인터넷을 써치하며 알게된 한가지가 있는데 우리 오순절 교단에서 설명하는 삼위일체론을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기독교 기본교리는 모두 칼빈 신학박사님들의 블로그에만 올려져 있음을 알게됩니다. 오순절 교단의 목사님들이나 신학자가 운영하는 블로그 자체를 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칼빈 형제들과 극렬한 방언 토론을 하며 성령세례와 방언을 전해야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불신앙과 오해에서 비롯되는 무수한 공격을 방어하는 입장에서 성령론과 삼위일체론에 관심을 집중하는데 오순절적 가르침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삼위일체론을 비롯하여 모든 기독교의 교리는 이단들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수호하고 성도를 지키기 위하여 선조들이 정립한 교리입니다. 그러함에도 우리 하나님의 성회 목사님들은 타 교단을 향하여 교리 싸음에 관여 한다거나 블로그를 운영하며 성령론을 적극 전하고자하는 하는 움직임이 없습니다. 주께서 맡겨주신 교회를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모든 권한을 내어드리며 순복하며 의탁하여 인도하시는대로 목양하게 하시는 하성의 목회자의 부르심이 아닌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비주의로 나가는 오순절적 이단들을 보면 인터넷을 사용하여 그들의 교리를 적극적으로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기본교리나 성령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그들의 꼬임에 쉽게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라도 오순절적 신학을 전하자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된 블로그를 운영하고는 있습니다만.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한쪽으로는 이것도 나의 교만이 아닌가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학자들의 블로그를 둘러보면서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신학자들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설명 중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각각의 사역에 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점을 발견합니다. 어느 한 블로그에 달랑 한줄로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멘션하고 지나가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500여년 전에 종교 개혁으로 개신교가 태동되면서 사단의 전략이 개입되지 않았을까하는 저 개인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개신교가 태동하며 신학이론이 활발하며 그 때에 신학 이론에서 패하면 그 의미는 바로 죽음 입니다. 신학이론이 횡횡하여 교회가 위협을 받게되자 신학자들이 모여 신학을 정립하여 교회에 발표하게 되는데 그 신학 정립에 독이 첨가됩니다. 그 독이 무엇이냐. 바로 반 신비주의 사상입니다. 성경에는 반 신비주의 사상이란 없습니다. 반 신비주의론으로 인하여 정통 교회라는 교단에서 반 성령주의가 발생합니다. 즉 반 성령론이 횡횡하면서 기독교 역사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사역에 관한 신학이 아예 배제되어 왔었습니다. 필연적으로 20세기초에 마가다락방에 보혜서 성령님이 강림하시면서 말세지말 마지막 때에서야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반 신비주의 사상에서 파생된 신학의 오류가 한국 교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영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신비다. 신비이신 삼위의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이단으로 빠지는 긿이다. 오히려 교회를 인도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에게 집중하라는 하성의 카르침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인류의 구원 역사에서 성부 하나님의 사역과 성자 하나님의 사역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각기 다릅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아들과 성령이 하지 않는 일은 하나님이, 하나님과 아들이 하지 않는 일을 성령이, 성령과 하나님이 하지 않는 일은 아들이, 이렇게 각각 삼위 하나님의 분담하는 일(사역)이 다릅니다.
2.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우리들을 향하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알고 싶은 갈급함으로 기도중에 기독교 3대요소라 할 수 있는 즉 사랑, 구원, 성령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3. 그런데 이러한 기독교의 3대요소가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절묘하게 설명합니다.
1) 사랑이신 성부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2) 구원자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실행하셨습니다.
3) 또 다른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께서 구원 역사를 성취하십니다. (성도의 삶과 교회의 사역을 통해서)
4. 영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인류 구원의 방편을 예비하시고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영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 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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