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성령론_ 고린도 전서 14장 "하라, 하라, 하려고 하라"
성인성경학교 2024. 12. 1. 12:5318. 성령론_ 고린도 전서 14장 "하라, 하라, 하려고 하라"
1. 예언을 하려고 하라(1절-5절)
2. 예언과 통변의 지침(6절-10절)
3. 풍성하기를 구하라(11절-15절)
4. 공중 예배의 안수와 지침(16절-20절)
5. 방언과 예언의 목적(21절-25절)
6. 예언과 통변의 지침(26절-30절)
7. 성령의 권세에 순복하라(31절-35절)
8. 명령대로 질서있게 하라(36절-40절)
‘공중 예배의 방언과 예언의 지침서’라 명명하였는데, ‘공(공중) 예배’는 무엇입니니까?
기존 교회의 공(공중)예배에 관한 가르침을 찾아보니 주일 오전 예배 및 저녁 예배 또는 공식적, 정기적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를 ‘공예배’로 부르고 있습니다. 살펴보니 부흥성회를 공예배라 부르지는 않고 있습니다’
14장에서 사도 바울이 다루고자 하는 특별한 예배의 형식, 특별히 ‘공예배’라 하지 않고 공중예배로 부르는 이 예배는 곧 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의 특별성회, 또는 Revival Service, 부흥성회를 의미합니다.
제가 느끼는 우리 교단에서의 공중예배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특별집회 또는 부흥성회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특별집회에서 예배드리는 성도들을 통한 보혜사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가 현장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예배형식을 공중예배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공중 예배’는 특별히 우리교회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이주남 목사님의 제자훈련반에서 고전14장으로 훈련을 받을 때에 스승의 가르침으로 당시 제자들이 모두 공중(공) 예배로 인식한 계기가 되었다.
14장 전체를 위와같이 성경구조 및 핵심요약으로 여덟 단락으로 나눕니다.
1-8번까지의 단락이 진행됨에 따라 앞의 단락과 뒤에 나오는 단락이 서로 명료하게 순차적으로 설명하며 오순절 집회에서의 예배 형식이 순차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1. 예언을 하려고 하라(1절-5절).
1절: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아가폐(agape) 사랑을 추구하라, 신령한 것(spiritual gifts)들을 사모하(라)되, 특별히 예언(prophecy)을 하려고 하라. 사도 바울은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권면 이전에 우리 믿는 이들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입니다.
고전14장을 이해하고자 하면 은사장이라하는 고전 12장으로 13장 전체의 내용을 잘 알아야만 14장에서의 말씀의 의미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하라”, “하려고 하라"는 제목으로 증거되었던 12장 13장 말씀을 간단히 살표보겠습니다.
12장의 첫번째 절과 마지막 절, 13장에의 첫번째 절과 마지막 절을 살펴보면 12장과 13장의 전체 내용을 대략 알 수가 있습니다.
12: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12:13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12장과 13장에 이어서 (14장 1절)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권면 합니다.
은사장이라는 고전12:1절에서 고전13장 마지막 절까지 시작 절과 끝 절이 모두 14장1절 이후의 14장 전체를 향하여 "하라, 하라, 하려고 하라" 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12장 1절 "형제들아 너희가 신령한 것에 대하여 잘 알기를 원하노라", 12절 마지막 절에서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합니다. 여기서 제일 좋은 길은 14장 정체의 예언까지를 의미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여기서 신령한 것은 성령의 은사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성령의 은사 9가지 중에서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12장 첫절 이후의 모든 지시 사항이 → 14장을 향하여 가리키고 있습니다.
12장 1절로 부터 14장 1절까지 각 장의 마지막 절과 다음 장 1절을 연결하면 12장-14장에서 나타나는 말씀 전체의 사도 바울를 통한 주의 지침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신령한 것에 대하여 잘 알기를 원하노라.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므로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가장 큰 덕목인 13장의 '사랑의 은사' 장도 14장 1절로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로 귀결됩니다. 특별히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14장 6절로 15절의 공중 방언에서의 지침을 미리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장이 열리면서 "사랑"이란 단어가 13장에 이어 재 등장합니다. 신령한 은사인 예언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사랑을 따라 구하라 요구하십니다.
교회에 아직 교리에 관한 가르침이 확립되지 않았던 초대교회의 상황에서 은사가 넘치던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발생합니다. 교회의 분쟁과 분열 조짐에 관한 고린도 교회의 질문에 사도바울이 답변(고전 1:10-6:20, 1:11)하는 서신 내용이 고린도서 전체 내용입니다. "공중예배에서의 방언과 예언의 은사 사용"에 관한 지침 내용이 고전 14장 입니다.
사랑장인 13장1절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우리가 아무리 하늘의 영언과 세상의 모든 방언을 말한다 하더라도 성도가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인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아무 의미도 없는 구리와 꽹과리 소리와 같을 것이라. 13장 마지막 절에서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말씀합니다.
13장1절-9절에서 어린신앙인들의 철없는 신앙행위를 경고하며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무엇을 뜻합니까? 주님이 통치하시는 영원한 나라 천국이 믿는이들에게 임할 때에는 이 땅에서 부분적으로 하던 것(고전12:1-9)이 폐하리라. "우리가 이제(금세)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천국의 일이) 희미 하나 그 때에는 (주님의) 얼굴과 얼굴(내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주를)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주를)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러하니 믿음 안에 있는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천국에서는 주님의 사랑만이 남을 것이니 "그 은사중에서 최고봉은 사랑이라" 는 말씀 입니다.
은사의 최고봉인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하라)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먼저 무엇을 하려고 하기 전에 사랑을 추구하라, 무엇이든지 사랑이 동기가 되어 하라 하십니다.
특별히 예언을 하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성령세례를 필수로 받고 방언의 은사를 받은 자만이 예언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가 모든 또는 다른 신령한 은사들로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이요, 필수요, 입문이며, 모든 은사의 기본이 됩니다. 방언이 성도에게 주의 권능이 임하신, 성령세례 받은 외적인 증거이며, 방언이 구원받은 천국백성의 보장입니다. 이 땅에서 구원받은 외적인 증거로 나타나는 기본적인 은사가 방언이다.
방언의 은사가 없이는 예언의 은사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시지를 아니하셨다. 은사의 법칙으로 기억하라. 구원을 믿음으로 받듯이, 성령세례도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다.
성령의 은사들은 우열을 가릴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에 덕이 되기 위하여 서로 보완되며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 순서적으로는 방언의 은사가 필수로 통변과 예언의 은사에 앞서며 방언과 통변과 예언의 은사가 서로 보완하며 주의 뜻을 교회에 나타내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방언의 은사 없이 통변의 은사가 역사할 수가 없다.
은사자가 방언을 말 함이 없이 예언을 선포하더라도 은사자 본인은 영적으로 방언의 은사에 충만하여 통변과 예언의 은사가 함께 동시에 나타나며 주의 뜻을 선포하는 것이다.
대신 방언과 대인 방언.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For anyone who speaks in a tongue does not speak to men but to God. Indeed, no one understands him; he utters mysteries with his spirit"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하나님께 영으로 드리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 '대신 방언'을 의미합니다. 성도가 영의 기관을 사용하여 직접 하나님께 내 심령의 기도와 간구를 아뢰는 '대신 방언'은 영으로 교통하는 비밀한 언어이기에 아무라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하늘과 땅의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영의 기관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비록 본인이라도 그 외에 어떤 인간이나, 천사나, 귀신이라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이 하나님과 구원받은 성도 간에 영으로 비밀히 교통하는 기도가 '대신 방언'입니다.
3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공중 예배에서의 회중과 교회를 향한 방언이 즉 대인 방언 입니다. 대인 방언으로 말하는 방언 내용을 성령이 통변(방언 통역)하게 하시며 예언하심으로 교회에 덕을 세우며 성도들을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4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대신 방언은 비록 자신의 기도 내용을 알 수 없더라도 내 영이 자신의 모든 아픔과 소원을 주 하나님께 소상히 올리므로 하나님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므로 자기의 덕을 세우고,
회중을 향한 대신 방언이 통변으로 개인이나, 회중에게 향해 선포될 때에 이를 받는 성도나 회중,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직접 받게 되므로, 예언하는 자는 교회에 덕을 세우게 됩니다.
5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예언 즉 대인 방언하는 자가 사람에게 통변으로 말하여 교회에 덕을 세우며 성도를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4절- 5절에서 '대신 방언'과 '대인 방언'을 재 설명하고 있습니다. 2절의 '대신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 영으로 하나님께 소상이 기도와 간구를 아뢰기에 자기의 덕을 세우고, 3절의 대인방언으로 예언하는 자는 교회를 향한 계시를 선포하는 것이기에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라 말씀 하십니다.
2. 통변과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라(6절-10절).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너희가 다 개인적으로 대신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현대의 부흥회 집회 등 공중예배의 기도 시간, 안수기도를 받기 전에 회중 모두가 각자 대신기도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공중 예배에서 안수자가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사람을 향한 대인 방언이 나올 때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여 교회에 덕이되게 하기를 더 원하노라. 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공예배에서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직접 올려드리는 대신기도와 교회에 덕이 되도록 예언 즉 대인 방언을 하라 권면하던 사도 바울은 갑자기 5절에서는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을 하라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권면은 마지막 말세지말의 현대교회에서 부흥회 집회를 할 때에 말씀선포 후에 초대 된 강사 목사님이 회중들에게 축복기도 할 때의 어떻게 하라는 실질적인 지침을 자세하게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고전14장은 개인 골방 기도가 아닌 공중예배에서의 대인방언에 관한 사도바울을 통한 성령님의 지침인 줄로 알라) 하나님께 대인방언으로 자신의 소원을 아뢰면 자기 자신에게는 덕이 되겠으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덕이 되지 아니하니, 성도들아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쓰임받기 위하여, (대인)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라, (6절 설명참조)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성령님께 간구하라.
교회(회중)을 향한 대인 방언. . . .
6절: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나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내 개인적인 (대신)방언으로 하나님께만 기도로 교통하고, (대인방언)계시나 지식이나 예언들을 통변으로 알아 듣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 자신이나 교회에 무엇이 유익하리요.
7절-10절: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사단이의 궤계를 알리는 소리가 뜻이 분명하지 아니하면 어찌 영적 전투 준비를 하리요? 교회 생활이 이러할진데 공중예배에서 회중 모두가 알아 듣는 예언의 통변이 없이 그저 천상의 영언이나 알아 듣지 못하는 외국어 방언만 말 한다면 알아 듣지 못하는 소리로만 허공에 울리지 아니하겠느냐? 아무리 천상의 언어로 방언을 말한다 하더라도 통변이 없는 예언은 인간의 귀에는 모두 버벅대는 소리로 들리느니라.
3.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11절-15절).
11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그러므로 회중들이 공중예배 중에 성령의 계시를 알아 듣지 못하면, 계시하시는 성령님이나 회중들이 흩어진 바벨론의 언어들과 같이 알아 듣지 못하게 되며, 서로 상관없는 예배가 되지 않겠느냐?
12절: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너희가 영적인 은사들을 풍성히 받은 오순절 신앙인인들인즉, 더욱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각 개인이 받은 은사들을 사용하라. 은사에 부족한 자들은 더욱 큰 은사와 신령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사모하며 성령님께 간구하라.
13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그러므로 방언의 은사를 받고 대신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은 예언과 통변의 은사를 받기를 사모할지니.
14절-17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a)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b)",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c)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d)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e)"
4. 공중 예배에서의 안수와 지침(16절-20절).
"16. 만일 여러분이 영으로만 찬양하고 감사한다면 방언을 모르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여러분의 감사에 '아멘' 할 수 있겠습니까? 17.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현대인의성경)
예언(안수)하는 자를 향한 지침: 은사자가 상대에게 대인방언으로 안수(a)하며 축복(a)할 때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를 구하며, 순전한 마음으로 안수 축복(b)을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비록 예언의 은사로 축복을 하고자 하나 성령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하리라. 네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네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는 마음으로 안수 축복(b)을 하라]
[주]: 그러므로 방언으로 축복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공중방언 축복이면 통변을 세울 것이며, 개인적인 대인방언이면 상대가 듣는 방언(언어)로 축복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상대가 알아 듣지 못하는 받을 축복에 어찌 아멘 할 수가 있으리요(c).
안수하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 듣고 감사(d)를 하였으나, 상대에게는 아무런 축복이 되지 않느니라(e). 그러므로 알아 듣는 말로 축복을 할지니라.
[주]: [성령님께 쓰임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나타나리라]
[주]: 예언과 축복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덕(유익, 영광)이 되도록 교회와 성도의 사역에 한정되어 예언과 계시로 나타나야 한다, 점장이식 예언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지어다.
18절: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사도바울이 방언을 말한다는 의미는 어느 시기인가 성령세례를 먼저 받았음을 전제로 한다. 사도 바울이 성령세례를 언제 받았을까요?
1) 다메섹으로 씩씩대며 달려가던 바울에게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9:5) 을 직접 대면하여 만날 때에 (성령세례 가능성)
2) 예수를 일대일로 만난 후에 기도하고 있는 사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행9:17).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성령세례, 또는 성령으로 재충만 받았을 가능성)
3) 예수를 핍박하던 바울이 예수를 직접 만난 후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이신 예수를 핍박하였다는 자괴감에 얼마나 비통하였을까요? 그는 모든 인간적인 접촉을 끊고 아라비아 광야(갈1:17)에서 하나님과 홀로 시간을 보내며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을 받기 위한 신학 훈련을 받게 됩니다. 바울이 이 때에 성령세례, 또는 성령충만을 받았을 가능성.
19절: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르치기 위하여서,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보다는 통변의 은사를 사용하여 알아듣는 말로 축복하라.
20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오순절 그리스도인들아,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님께 모든 지혜를 구하라. 분별을 모르는 자유인들과 같은 악에서 멀리하고, 영에는 장성한 믿음의 분량의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라.
5. 방언과 예언의 목적(21절-25절).
21절: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절: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절: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6. 공중 예배의 예언과 지침(26절-35절)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3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공중 예배의 예언과 지침 부문에서는 필자가 직접 경험한 예배 현장에서 있었던 방언과 통변이 어떻게 교회에 예언으로 나타나는지 증거하는 장으로 대신한다.
1993년 미 하나님의 성회 Penn-Del District의 Annual Meeting 마지막 예배 시간이다. District의 superintendent의 불과 같은 권면의 설교 말씀이 끝난 후 그 교회의 담임 James Leak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서서 찬양으로 인도하며 모든 예배가 거의 막바지에 도달 했을 때이다.
얼마 동안 간절한 기도와 찬양이 어우러지며 예배 중에 운행하시는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온 회중 위에 역사하심을 느낄 때, 잠시 고요함이 흐르는 듯 하더니, 갑자기 회중 안에서 낭낭한 소리로 방언소리가 터져 나온다. 갑자기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놀라서 눈을 번쩍 뜨고 회중을 둘러 본다. 그 순간! 공중방언, 통변(예언) 그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바로 눈을 다시 감는다. 그런데 그 낭낭하게 들리는 방언소리가 귀에 많이 익다. 바로 2주전 부흥회에서 안수기도가 끝난 후, 모든 순서가 끝나가는 중에도 한 자매가 무릎으로 서서 간절히 기도한다. 그 모습을 본 강사목사님 다가가서 손을 머리에 얹는 동시에 “따따부따, 따따부따” 하며 언어 방언이 터진다. 강사목사님 왈 “방언은 혼자 다 받네” 당시에 언어 방언을 모르던 나에게는 기이하게 보일 수 밖에, 바로 그 방언이 미국인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진행되는 상황에 놀라 가볍게 감전된듯한 상태로 귀는 쫑긋, 온통 진행되는 상황에 집중 한다.
고린도교회에서 실제로 있었고 사도 바울이 고전14장에 기술한 그 상황이 현재 미국교회 실제 상황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교회에서는 모든 교인에게 성령의 은사가 넘쳐나 모두가 방언하고 예언하고 선지자 노릇 하며, 사역의 분담이 명확히 구분이 안 되었으며 예배에서 무질서 한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남으로 인하여 신자들이 제기한 질문을 당시 에베소교회에 있던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공중예배 부분에 대한 답변이며 Instruction이 고전14장이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변할 것이요. 만일 통변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예배 인도자는 공중예배 중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여 (영)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통제해야 한다. 예언(대인 방언)하는 자는 둘 많아야 셋으로 통제와 제한을 받으며 통변은 회중 안에서 한 사람이 하며, 다른 사람은 분별하라. 분별하는 사람은 당연히 예배인도자이다. 하나님의 성회 instruction의 가르침은 예언하는 자가 회중 안에서 통변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아예 예언을 하지 말라 한다.
지금 처음 당하는, 공중예배 중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에 모든 감각이 동원되어 집중한다.
잔뜩 긴장하여 집중하고 있는데 영어로 말하는 통변이 회중 안에서 낭낭하게 울려 퍼진다. 통변의 내용은 “ 담대하게 나가 전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말씀” 그대로이다. 통변이 나오자, 회중의 여기저기서 여성 성도들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참다가 째지며 터져 나오는듯한 소리로 “Jesus Christ” “Jesus Christ” 하면서 흐느낀다. 우리 한국 회중들 같으면 “주여” “아버지”하고 울부짖을텐데 그들은 “Jesus Christ” full name을 부르며 흐느낀다.
회중에서 나온 예언과 통변을 인도하시는 James Leak 목사님이 재차 설명하며 감사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closing한다. Praising Pastor가 단에 오르더니 찬양으로 회중을 인도한다. 대다수의 회중들은 움직이지 않고 남아있어 찬양으로, 기도로, 교회에 사역을 권고하는 말씀을 주신 성령님을 찬양한다. 이 교회는 해외선교 특히 멕시코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로 '담대하게 나가 전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더욱 선교에 힘쓰는 교회임이 분명하다.
이 글을 기록하는 목적은 이러한 공중예배 중에 나타나는 예언과 통변의 역사가 기독교2000년의 역사가 흐른 21세기에서도 여전히 현재 시간으로 나타남을 세상에 알리려 함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와 같은 공중예배에서 나타나는 예언과 통변의 역사가 현재 오순절 교단, 미 하나님의 성회 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100주년을 넘긴 한국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를 비롯한 어느 교단에서도 예배 중에 공중방언이나 방언통역(예언)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26절-30절)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으면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31절-35절)"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7. 성령의 권세에 순복하라(31절-35절)
어떤 은사자들 중에서는 방언 통역은 방언이 자기 모국어로 귀에 들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가능성을 100%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언 통역이 고린도전서 12장에 언급된 다른 성령의 은사와 성격이 같은 것을 볼 때 이 은사는 귀에 들리는 은사라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방언의 뜻이 깨달아져 그것을 모국어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와 비슷한 것으로서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을 성령의 나타남으로 갑자기 알게 되는 것이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그것을 말하기 전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방언 통역은 방언을 하고난 다음 그 방언에 대한 통역으로서의 말을 하는 것이다.
칼빈의 고린도전서 주석(www.ccel.org/ccel/calvin/calcom39.toc.html)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하는 모든 것에서 나오는 모든 선한 결과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주신 것이 아니면 우리에게서 나타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잊어버리고서 자신들에게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사들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오류를 교정하려고 한다고 한다. 즉, “사랑에 대해 별 고려가 없든지 전혀 생각이 없이 과시와 겉치장으로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바로 그런 문제요 교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영적 은사들을 주신 이유는 “교회가 그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의 유익을 위해 그들이 서로를 돕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는 “형제들을 세우기 위한 것”, 즉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라고 고린도전서 주해에서 말합니다.
주: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하는 모든 것에서 나오는 모든 선한 결과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주신 것이 아니면 우리에게서 나타날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잊어버리고 자신들에게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공중방언의 역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한국교회, 특히 방언을 부정하는 은사중단론자들에게 고전14장의 말씀을 인용하는 선호도가 높은 것을 보면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뉴욕에 가본 경험이 없는 자가 뉴욕에 대하여 더 잘아는 척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은사중단론자들에게는 공중방언 성구를 인용할 자격이 아예 없다. 주장한들 전혀 무리한 말이 아니다.
26-35 교회안에서의 규칙,
34-35 교회에서의 여자의 의무,
8. 명령대로 질서있게 하라(36절-40절)
36절-40절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관리자 방 2018. 11. 3.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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