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성령론_ 유아세례, 용서받지 못하는 죄, 천국 지옥 그리고 심판
성인성경학교 2025. 3. 23. 10:15유아세례, 자신의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나이, 그리고 어린이의 헌아
(질문, 11) 유아세례, 그들의 천국에 대한 보장, 그리고 주님께 그들을 헌아하
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성회의 위치는 무엇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구세주가 필요하다고 깨달은 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은 모든 사람은 (성인이든지 어린아이든지)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2:28, 41, 8:28, 41). 그러나 성경에는 영아나 매우 어린 아이들이 세례를 받은 기록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아직 구세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어린 아이들에게 최우선 순위를 두십니다. 누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인가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구약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교도 신 몰렉에게 그들의 어린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특별히 금하셨습니다 (레위기 20:1-5). 만일 하나님이 어린 아이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러한 어린 아이들을 지옥의 영원한 불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성회는 하나님이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책임을 지는 나이” 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만일 어린 아이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이해하고 용서함을 통하여 적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죽는다면 그 어린 아이는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로서 천국에서 영생함을 상속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서 우리들은 아기 예수의 부모들이 그를 성전으로 데려가 “주께 드린” (누가복음 2:22) 것을 봅니다. 후에 복음서들은 어린 아이들과 영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예수님이 그들을 만지고 축복하도록 했다고 전합니다 (마태복음 19:13-15; 마가복음 10:13-16; 누가복음 18:15-17).
이러한 것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성회 교회는 부모들에게 그들의 어린 아이를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헌아할 것을 격려합니다. 이것은 흔히 교회의 예배 중에 행해집니다. 어린 아이를 헌아하면서 부모들은 그 어린 아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하나님과 교인들 앞에서 어린 아이를 위해 경건한 삶에 대하여 모범이 될 것과, 어린 아이를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것을 맹세합니다.
관심사 :
성인이 되어 그리스도를 영접한 어떤 사람들은 어린 아이였을 적에 그들이 받은 세례가 물세례에 대한 신약 성경의 명령을 충족시키는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베드로전서 3:21).
하나님의 성회에서 우리들은 신약 성경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구원(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의 죄를 용서함 받음)을 받은 후에 물세례를 받아야 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모든 새로운 개심자들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 물세례에 대한 성경적 양식을 따르기를 촉구합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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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하는 죄
(질문, 10)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성회가 가지는 믿음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2:3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누가복음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위와같이 복음서에는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세 복음의 모든 저자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 이와 연관된 문맥은, 이러한 죄를 범하는 행위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하신 예수님의 일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 것이라고 돌리는 죄도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관련된 말씀을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네 가지 중요한 면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로, 그것은 계획적 혹은 고의적인 불신의 행위였습니다. 마가복음 3:22는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기록된 말씀들(마가복음 2, 3장)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사역에 반대하는 양상을 알 수 있으며, 그들은 역시 그와 같은 의도를 가지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죄는 무지하기 때문에 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과 (마태복음 12:24) 서기관들은 (마가복음 3:22) 율법에 능통한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정말로 메시야인가’ 하고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을 들은 후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신성모독으로 송사를 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막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행위가 메시야에 관한 성경의 예언의 말씀과 일치 한다는 것을, 분명히 그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이사야 61:1; 누가복음 4:16-21, 7:18-22를 보십시오).
이러한 죄는 단 하나의 순간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그것이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마가복음 3:22에 대한 헬라어는 “그들이 계속해서 이야기 했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서기관들이 반복적으로 비난을 하면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미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끝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을 충분히 본 후에 이러한 죄를 범했습니다. 누가복음 4:18은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나아가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과적으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한 성령님의 증거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면에서 볼 때에, 우리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혹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한번의 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영적 상태나 조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들에 기술된 행동은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를 계속적으로 거부한 사람들의 거역하는 과정에서 있어서, 그들의 최종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확실한 일과 인격을 그토록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은, 심지어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령의 능력을 보았을 때에 조차도, “빛”(하나님의 일)과 “어두움”(사단의 일)을 분변할 수 없는 무력함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관심사:
흔히 교회에서 우리들은 자신들의 영적 감각이나 성장의 결핍 때문에 불안해 하는 개인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한 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었다는 괴로운 생각을 뇌리에서 떨쳐버리지 못하고, 심지어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개인들은 그들이 염려하는 바로 그러한 염려가 그들이 용서받지 못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성경말씀을 통해서 조심스럽게 인도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죄를 범한 복음서에 기록된 사람들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죄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거부했다는 것을 주목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들은 죄에 대한 진정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고린도후서 7:10), 회개와 믿음으로 예수님께 오는 자는 결코 내어 좇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요한복음 6:37),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로마서 10:9), 그리고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신자는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구세주를 모시고 있다 (요한1서 1:9)고 하는, 성경이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 역자 주: 여기에서 언급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한 네 가지 중요한 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계획적 혹은 고의적인 불신의 행위였다.
(2) 그것은 무지하기 때문에 범한 것이 아니었다.
(3) 그것은 하나의 순간적인 행위가 아니었다.
(4)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을 충분히 본 후에 이러한 죄를 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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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지옥, 그리고 심판
(질문, 14) 하나님의 성회는 천국과 지옥을 문자 그대로 믿으며, 그와 함께 마지막 심판 날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성회는 모든 사람의 심판을 믿지만,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의지적으로 거절한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실제적 천국과 실제적 지옥을 각각 굳게 믿는 것입니다. 의로운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상급이 없이는, 그리고 이기적인 삶과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용서함을 거절하는 것에 대한 처벌이 없이는, 마음과 태도와 전 생애의 행동을 평가하는 심판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9:27).
우리들은 천국, 지옥, 새 예루살렘, 그리고 불못에 대하여 기술한 용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분명한 문맥상의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성경의 용어는 언제나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져야만 하며 가장 명백하고 단순한 의미로서만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천국이나 지옥을 묘사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의 실체는 우리들이 아무리 상상하려 해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천국의 영광과 존귀 그리고 지옥의 공포와 고통을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든 비유적으로 이해하든 그 의미는 동일합니다. 지옥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됨을 경험하게 될 장소이며, 천국은 하나님의 완전한 임재하심을 즐기게 될 곳입니다. 지옥이 악인을 기다리고 있는 무서운 종착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회는 너무 늦기 전에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한 굳센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인의 심판.
기독교인은 그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전에 지은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를 받을 때에 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미래의 심판 역시 모든 기독교인을 기다립니다. 오직 기독교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교회의 휴거 다음에 오며, 그 때에 영원히 즐기게 될 상급이 충성과 헌신적 봉사에 근거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충성된 기독교인을 기다리고 있는 천국은 그토록 놀라운 곳이어서 인간이 이해하도록 묘사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어떤 비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천국을 ‘밝은 미래를 건설하려고 애쓰는 원시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미신적 개념’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천국의 실체는 천국에 대해서 읽는 그가 가지고 있는 성경만큼 확실한 것입니다. 천년기의 끝에 지구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는 영원한 천국에 대하여 생생하고 상세한 것을 조금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 22장)
악인의 심판.
악인에 대한 마지막 심판은 무서운 그림입니다. 큰 백보좌 심판이라고 불리는 (요한계시록 20:11-15) 그것을 기독교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심판대와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재판관입니다.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모든 민족과 모든 세대를 통하여 죽은 모든 악인입니다. 그들은 사는 동안에 행한 그들의 행위에 의해서 심판을 받습니다. 이 심판은 아무도 도망하거나 의롭다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0:14,15). 우리들은 악인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종
착역을 전통적으로 지옥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서 악인들은 그들을 의로운 자로 만들기 위해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모든 사람을 말합니다.
전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떨까요? 그들이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일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악인이라고 선언되겠습니까? 구원의 진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유아들은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까지 우리들은 모든 땅에 대한 재판관되시는 하나님이 이러한 일들을 올바르게 판단하리라고 신뢰해야만 합니다 (창세기18:25).
그러나 우리들은 또한 하나님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가 전파되도록 노력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가 받은 진리에 대해 어느정도 응답하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은 그 사람이 모든 진리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하는 것을 재판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알고 그에 대해 응답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죽은 어린아이는 분명히 지옥으로 보내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이러한 경우에 바르게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회는 이러한 진리에 대한 모든 사실을 믿고 가르칩니다.
관심사 :
어떤 사람들은 지옥이 영원한 고통의 곳이 아니라, 존재함이 영원히 중단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거짓 가르침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형벌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의 근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부터 고의로 돌아서는 사람만이 지옥으로 갑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제의와 초청을 끊임없이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거룩함으로부터 돌아서는 악인을 처벌하셔야만 합니다.
바울은 다가오는 심판에 비추어 지상 대 명령을 긴급하게 성취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고린도후서 5:11).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성회에 속한 우리들은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 . .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전서 9:16) 라고 말합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이 위치에 대한 공식적인 기술은 하나님의 성회의 위치를 표방한 근본진리에 대한 선언, 15항, 마지막 심판; 그리고 16항, 새 하늘과 새 땅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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