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2018. 11. 18. 17:27

금주


하나님의 성회 총회는 역사적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술의 사용을 반대해 왔다. 교회의 초기문서는 조건이나 타협없이 절대 금주의 입장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세상과 구별되는 표시이며 하나님께 헌신된 봉사의 상징인 금주에 대하여 이의가 제기되고 있다. 믿지 않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신자들에게 항상 성령충만 하도록 도전하는 지속적인 효과적인 사역이 알콜성분의 음료 사용에 관한 부주의한 자세 때문에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모든 신자들에게 생명을 파괴하며, 영혼을 파멸시키며, 사회를 메마르게 하는 사단의 무기인 알콜을 멀리 하라고 권한다. ① 성경은 취하게 하는 음료에 대하여 단호하게 경고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이 악에서 분리될 것을 경고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더 잘 섬기기 위하여 이 악에서 분리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② 인간의 불행과 죽음과 재산의 파괴라는 점에서 알콜의 값 비싼 댓가에 대한 공공의 분노와 사회적인 악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남자와 여자의 몸과 마음을 교활하게 괴롭히며 묶어놓은 어떤 음료의 사용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성경은 알콜에 기인한 비극을 기록하고 있다.


포도주에 대하여 히브리어나 헬라어가 말하는 음료수가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구약에서 사람들이 발효된 포도주를 마셨던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노아는 홍수의 심판으로부터 자기의 가족을 구한 후에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만들어 취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신과 그 가족에게 불행을 안겨 주었다.(창 9:20-27) 노아가 술이 깨어 제정신으로 돌아 왔을 때 단순히 마시기만 했는데 그런 부끄러운 일을 저지른 것을 깨닫고 놀랐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롯의 두 딸은 롯이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게 하여 그 딸들이 그와 함께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였다. (창 19:30)


아하수에로 왕은 권세가 대단하였다. 그는 큰 왕국을 통치하였으므로 아름다운 아내도 두었다. 그러나 그의 술손님들 앞에서 행한 어리석은 행동은 그의 왕비를 폐위시키고 그 결혼 관계를 취소시키고 말았다.(에스더 1:9-22) 벨사살왕은 술취한 상태에서 유대인 성전에서 가져온 신성한 그릇으로 신성 모독죄를 범하고 말았다. 그날 밤에 예언한대로 그는 죽임을 당하였다.(단 5 장)


성경에 의하면 술취하는 것은 죄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라고 언급한 것은 어떤가(삿 9:13)? 또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 (시 104:15)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그러한 언급이 인간의 연약함과 마음의 완약함에 대한 수용이라고 믿는다.(마 19:8 비교) 성경의 정신과 의도는 알콜의 악한 결과를 강조한다. 

성경의 원리와 모범은 금주를 권한다.

알콜은 몸을 파괴한다. 비록 소량일지라도 그것을 교묘한 파괴활동을 시작하여 정신적 및 육체적 반응에 대하여 희생을 치루게 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제사장이나 왕은 알콜성 음료를 마시기 말라고 지시하셨다. 

구약의 레위인들이나 이스라엘 영적 지도자나 제사장들에 대한 지침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님 존전에 나갈 때 포도주나 취하게 하는 음료를 멀리하라는 것이었다.(레 10:8-11) 이렇게 금주를 요구하는 것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이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사이를 구별 할 수 있게 하여 하나님의 모든 법의 교사가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 모든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제사장이 되었다.(벧전 2:9, 계1:6) 따라서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도 자신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구약의 제사장에게 요구한 금주의 기준이 오늘날 모든 크리스찬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역시도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해야 하며, 하나님의 가르침과 경건의 모범을 크게 필요로 하는 사회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사회의 지도자들도 역시 알콜을 멀리해야 한다.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에게 마땅치 아니하고,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에게 마땅치 않도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간곤한 백성에게 공의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잠 31:4,5) 만일 영적 지도자나 사회적 지도자에게 금주가 전적으로 필수적이라면 모든 신자들에게도 더욱 필수적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왕들이며 제사장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적은 양의 알콜도 너무 많은 것이다.

“적당히 마시는 것”을 옹호하거나 너그럽게 보아주는 크리스찬은 완전 금주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 틈을 사단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적인 정의에 의하면 알콜은 마약이다. 적당히 마시는 사람이 결국 술에 중독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너무나 순진한 사람이다. 

술취한 자의 상태는 비참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지막 비극을 명백히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위험한 것과 관계맺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알콜 중독자 중에 첫 잔을 마실때에 스스로 알콜 중독자가 되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첫잔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계속 고집해온 사람 중에는 알콜 중독자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마침내 뱀같이 물며 독같이 쏠”(잠23:32) 이 악에 대항하며 담대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알콜의 효과는 잠언 23 장에 명백하게 묘사되어 있다. 거기에는 육체적인 영향과 감정적인 영향이 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잠언 23:29).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찾으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잠 23:30) 그러나 그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그리고 창상 등은 시궁창에 빠진 술취한 자를 위해 예배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너무나 자주 사교적인 음주에서 시작된다. 

사단의 모든 다른 유혹과 마찬가지로 알콜성 음료를 마시는 것은 매혹시키는 요소가 있다. 그래서 성경의 경고는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간다”(잠 23:31)는 것이다. 그 유혹의 힘이 강하여 즐거움을 찾는 자로 하여금 곧 당황하게 될 애처러운 상황에 빠뜨리는데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잠 23:33) 심지어 아픔과 주의력에 대한 정상적인 신체적 보호체계도 알콜로 인하여 무너진다.(잠 23:34,35)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잠 20:1) 하나님의 뜻은 그의 백성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기만하고 파괴하는 사기적인 배신자를 멀리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거룩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기준은 신약이 결코 구약보다 낮지 않다. 알콜의 남용과 과용에 대한 구약의 경고는 신약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거룩한 생활을 요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 우리는 이 성전을 알콜을 포함한 더러운 습관으로부터 깨끗이 해야 한다. 이 인간성전을 알콜의 영향과 지배가 가능하도록 개방하는 것은 이 성전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라는 성령의 충고에 위배되는 것이다.(엡 5:18). 가장 안전한 길은 알콜성 음료 곁에 가지 않는 것이다. 

딤전 3:3 에서 감독은 마땅히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영적인 지도자는 모든 크리스찬이 따를 수 있도록 가장 높은 수준이 모범을 모여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의 동료 신자들에게 그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듯이 그의 모범을 따르도록 기쁘게 초청하였다. (고전 11:1) 알콜을 마시는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는 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호의적인 사람들은 딤전 5 장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지시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고 하였을 때 그는 사교음주로서 포도주를 권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포도주를 약으로 사용하라고 언급한 것은 오히려 디모데가 생활방식으로써 금주하고 있음을 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거룩한 생활과 전적인 금주에 대한 요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지상에 그의 궁극적인 왕국을 건설할 시기가 가깝다고 기대하며 바라는 본 교단에 매우 적절한 것이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과 그들의 때와 마지막 때 사이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눅 21:34,36)고 경고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재림을 바라보며 기도한다면 우리의 감각은 가능한 한 더욱 예민하고 또렷해야 한다. 

알콜의 사용은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원리를 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원리들 중에 하나는 약한 형제를 실족하지 않도록하며 젊은 크리스찬을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성경적인 주의사항이다. 

사도바울은 롬 14 장에서 약한 형제에 대한 강한 형제의 책임을 다루고 있다. “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롬 14:21) 음주를 멀리하는 것은 이 세상의 사회적 풍습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강한 의지의 결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크리스찬은 자신의 크리스찬 증거에 대한 완전 금주의 중요성을 피할 수 없다. 

이 진리는 특히 이 세상의 젋은이들에게 적용할 때 의미가 있는데 현재 많은 젊은이들이 마음을 바꾸어 주는 약으로서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부모나 장로가 무어라고 말하든지 그들은 정도 이상을 마시고 있다. 만일 크리스찬 부모나 성인들이 술을 적당히 혹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만큼만 마신다고 해도 다음 세대는 보다 부주의하고 무절제하게 마시게 될 것이다.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모범은 완전 금주를 실시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는 나이 먹은 세대가 그들의 자녀나 젊은이들을 위하여 취해야 할 책임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명백히 말씀하셨다.

“실족케하는 것은 없을 수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저가 이 작은 자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눅 17:1,2)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지옥에 보내거나 파멸시키는 모범을 세워서는 안된다. 

신자로서 우리는 음주에 대한 선을 그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적당한 음주선에 선을 긋는다면 우리 목사들은 곧 성도들에게 술취하지 말라고 권고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 금주에 선을 긋는다면 알콜중독의 죄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낼 것이다.

사교음주는 사단의 잔인한 속임수이다.

사교음주라는 용어는 점잖은 분위기에서 행하는 음주가 다른 화경에서 마시는 것과 어느정도 차이가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가 크리스찬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사교음주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문제가 현재 비통할 정도까지 크게 되었다는 사실은 강력하고 교활한 영향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령은 사교음주의 사슬에서 건져내실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속박에 빠져있는 모든 크리스찬과 함께 즉각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탄원한다. 

심리적인 문제를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이(이 중에는 불행히도 크리스찬들도 있다.) 약간의 술을 통해서 손쉬운 해결책을 구하도록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해결해 줄 줄 알고 사용했던 것이 더 큰 문제를 야기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그 영향 아래에 들어갈 때 우리를 방탕하게 하고 파괴시키는 마약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유함을 얻는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1300 만의 문제 음주자들 모두가 사교음주나 순진한 첫 잔으로 알콜중독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 나라의 치명적인 교통사고 절반가량이 음주 우전에 기인한 것이다. 정부조사에 의하면 생산감소, 자동차 사고, 건강관리, 폭력범죄, 화재 손실들을 포함한 알콜중독의 경제적 손실은 매년 일천억 달러를 상회한다고 한다.ⓐ 보고된 살인, 폭력, 강간, 자살, 가정폭력, 어린이 학대 등의 상당 비율은 알콜과 꾸준히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악폐의 상당부분에 대한 출발지점으로서 가교음주의 역할은 깊이 고려되어야 한다. 

태아 알콜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은 미국에서 출생시 나타나는 결함으로서 정신장애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고있다.ⓑ 임산부가 마신 술은 태반을 지나 아기의 혈관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는 너무나 자주 신생아의 체중과 크기가 평균에 못미치고, 수족과 관절에 결함이 있고, 심장에도 결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태어나지 아니한 아기의 생명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태어난 아기의 건강도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음주는 우리나라 도덕이란 천을 찢고 있으며 국가적인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크리스찬들은 술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함으로써 자신들의 책임을 다 할 수 없다. 문제가 단지 경제적,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인 것들만이 아니다. 알콜중독은 병이 아니라 죄이다. 알콜중독의 충격적인 증가 현상은 오늘날 영적인 세대에 의해서 발생한 방종과 무법 정신의 또 다른 표시이다. 

금주로의 초대

알콜성 음료는 크리스찬의 생활에서 있을 곳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의 성회가 이러한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취하는 입장에 추호의 의심도 두지 말자. 우리는 완전 금주만이 납득할 만한 크리스찬 생활의 자세라는 우리의 확신을 명백히 선언한다. 우리는 본 교단 소속의 교역자와 평신도를 포함한 모든 회원과 친구들에게 말과 생활의 모범으로서 음주로부터 완전히 멀리하는 것을 가르치도록 요구한다.

ⓐ 미국 알콜중독 협회(National Council on Alchoolisim, Inc., 12 West 21st St. New York, NY 10010)에 의해 주어진 통계. 
ⓑ 미국 알콜중독 협회 통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