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와 가정 폭력
성도들의 대인관계 2018. 11. 27. 02:20학대와 가정 폭력
(Q 8) 하나님의성회는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는 자들 (기독교인 배우자, 자녀, 기타)에게 어떤 견해와 충고를 해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성회는 지금 우리들의 세계에 역병(疫病)처럼 퍼지고 있는 가정 폭력과 많은 비극적인 모습의 역기능(逆機能)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짓밟고 유린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대단히 슬퍼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이 그런 학대당하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악이 계속 진행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할 것입니다.
학대의 정의
“학대란 어떤 사람이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감정적, 영적으로 해를 가하는 파괴적인 의지나 행동"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피해를 당하는 자의 뜻이나 복지(福祉)는 전혀 배려되지 않고 무시당하게 됩니다. 학대는 대개 가해자가 자기의 높은 지위나 권세 또는 정신적, 육체적 힘을 잘못 사용함로써 일어납니다. 가해자는 자신의 권세나 힘을 이용하여 피해자의 뜻을 억누릅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폭력에서 자기를 보호할 힘이 없습니다.
폭력과 다른 분노와의 차이점
우리는 모두 분노와 좌절감에 지배를 받습니다. 이런 연약한 순간을 만나면 인간은 곧 반응을 하게 되는데 때때로 그 반응은 격한 감정 폭발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종종 그러한 행동의 밑바닥에는 스트레스와 분노, 걱정, 성가심, 불쾌감, 또는 일반적인 불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관계를 망치고 신뢰를 깨뜨리는 것입니까? 확실하게 그 차이를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 대해 징계나 야단을 칠 때 부지중에 자녀에게 부당한 행동을 가할 수가 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던진 거친 비난의 말이 깊이 오랫동안 마음에 상처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독교인들에게 그런 행동을 삼가하도록 강력히 권하고 있습니다. 배우자의 경우 성경은 명합니다. “그
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 하라” (에베소서 5:33). 자녀들을 대함에 있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에베소서6:4).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이 오용(誤用)되기 쉬운 상황에서 남편 또는 아내는 성령님께 자신의 행동을 고쳐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만약 성령님께서 우리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책망을 하신다면 우리는 즉시로 회개하고 상처를 입힌 자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면 그는 담임 목사님이나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어서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를 갖고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 속에 그리스도가 거하시게 하는 일입니다 (에베소서 4:29-5:2). 매일 기도와 성경읽기를 통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순종하겠다고 선택함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고 우리의 감정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됩니다.
극한적인 가정 폭력에 대처하기
우리는 그것이 적절한 징계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분노의 감정의 발작적인 표현인지, 아니면 오래 동안 남에게 해를 입히는 학대에서 나온 것인지를 즉시 분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끔씩 좌절감으로 인해 감정이 폭발하는 것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 입니다. 이것은 매를 때리거나 짖궂게 괴롭히거나 다른 성적인 학대 (이러한 일들은 법적으로 처벌받는 형사적인 범죄행위입니다)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미국의 각 주마다 독특한 법이 있고 학대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가정도 극단적인 형태의 폭행이나 학대로부터 제외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의 가정들에 비해서는 적게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인의 가정에서도 폭행과 학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성회는 그의 구성원들과 사회를 향해 이러한 여러 학대에 대해 경계하고 조심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 학대가 특별히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경우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들이 강간, 근친상간, 구타, 그리고 신체적 폭행입니다. 여기에는 또한 카운슬러들에 의한 성적인 착취, 어린이를 이용한 도색영화 제작, 배우자에게 가학 피학성 변태 성욕을 요구하는 일, 외설스러운 자기 노출 등과 같은 탈선적인 것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들이 가정 안에서 일어난다면 그들이 갑절로 비난받아 마땅한데 그 이유는 가정은 사랑과 신뢰와 안전의 장소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정폭행 신고하기
가정 폭행 여부를 분간하려고 할 때 몇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만일 배우자에게 학대를 당했을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만일 자녀가 폭행을 하거나, 또는 학대를 받은 피해자일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만일 폭행이 당신의 영향권 밖에서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까?
우리가 그런 폭행을 보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희생자들은 대개 자신이 폭행당한 일에 대해 자기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죄책감은 침묵을 가져오고 그러한 침묵은 폭행자들로 하여금 다시 똑같은 죄를 반복하도록 허락하는 결과가 됩니다.
폭행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해야 할 첫 번째 단계는 그것을 중지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기에 누가 연루되어있는지 관계없이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디서 언제 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신고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자주 이런 폭행 사건은 신고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침묵의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가해자로부터 올 보복의 두려움, 그가 저지른 행동으로 인해 형사처벌을 받을 애인과의 관계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리라는 두려움. 이유를 불문하고 그러한 두려움은 희생자와 가족들 사이에 침묵을 가져오고 그 침묵
은 다시 폭행을 계속하고 더 크게 확대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당하고 있는 학대가 범죄 행위에 속하는 지 아닌지 여부를 바로 알지 못할 경우에 그 가정의 폭력은 계속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피해를 당한 기독교인 아내가 생각하기를 성경적으로 남편은 가정의 머리이기에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그녀는 남편으로 하여금 계속 그녀와 온 식구들을 괴롭히도록 허락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폭력을 금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살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타인에 대하여 분노의 생각을 품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21, 22). 그러므로 그런 폭행을 당한 당사자나, 또한 교회를 포함하여 그 폭행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그 폭행이 속히 중단되도록 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만일에 그것이 교회의 누군가와 관련되어 있다면 담임 목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 사건이 발생한 주에 따라 다르지만, 증인은 그 폭행 사실을 시 당국에 보고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그 폭행 사건을 보고한 기독교인은 그 후에 소문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종종 쓸데없는 뒷 말로 인해 폭행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더 큰 손해가 입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폭행을 바로 잡기
폭행사건이 관공서에 보고 되면 폭행한 자를 불러다가 심문하는 것이 그 다음 절차입니다. 대개의 경우 그 가족과 타인을 폭행한 자들은 자기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종종 자신들이 과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었던 사실을 말합니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가능하면 그런 자들은 경험이 많은 전문적인 크리스챤 카운슬러들에게 보내져야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폭행을 저지른 자는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고치지 않고 계속 남을 해치려는 자는 사실상 죄에 깊이 빠진 자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변화시키려고 주시는 기회를 거절하는 셈이 됩니다. 어린아이의 경우 생명이 위협을 느끼게 될 경우에는 당분간 안전을 확보하고 치유와 보호를 위해 따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무죄한 자는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폭행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폭행을 가한 자는 법에 따라 적절히 처벌되어야 합니다.
학대당한 자들을 위한 소망과 치유에 대해
학대에 관련된 모든 자들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실수 있으시며, 폭행한 자들을 변화시키실 수 있으시며,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자들을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시켜 주실 수 있으십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를 모든 죄에서 돌이키시고, 고침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이 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28). 시편 34:17-18은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학대를 당하여 피해를 본 가족들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깨어진 관계를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가정들은 하나님의 용서안에서 그 비결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힘을 통하여 그들은 역 기능에서 온전한 가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난 날의 저지른 죄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는 자들은 초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었던 사도 바울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바울은 일반적인 모든 죄인들에게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9-11). 이 진리가 과거에 폭행의 죄를 저질렀던 자들을 포함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얼마나 큰 소망과 평안을 주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로마서 8:1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기독교인의 초점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요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를 모든 죄에서 대속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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