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심판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 2018. 9. 25. 15:56

영원한 심판


영원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성회 입장을 하나님의 성회의 “근본진리 선언”에 나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제 15 항, 마지막 심판 : 악한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그들의 행한 대로 심판받는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누구든지 마귀와 그 사자들 그리고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함께 영원한 심판으로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인데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마 25:46, 막 9:43-48, 계 19:20, 20:11-15, 21:8)


여기서 우리는 심판이 마귀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며, 둘째 사망이라 불리는 불못에 있는 것임을 주목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점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정의하고 설명을 하고자 한다. 


악한 자는 사단과 운명을 같이 나눈다.


성경은 불못이 사람을 위해 예배된 것이 아니라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되었다고 말씀한다.(마 25:41)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항상 선하셨다. 첫번째 하늘과 땅은 좋게 창조되었다.(창 1:31). 율법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여 주어졌다.(신 6:24)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벧후3:9) 사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선을 위하여 모든 일에서 역사하신다.(롬 8:28)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단이 앞으로 다가올 새 하늘과 새 땅을 더럽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불못에 그를 가두어 놓으실 것이다. 사단을 따르는 사람들은 사단의 운명을 같이 나눌 것이다.(요 16:8,11)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고 사단을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요 8:44)


사단이 받는 벌을 함께 받는 사람들은 “악인”이라고 한다.(마13:49,50) 이것은 그 행동이 악하고 가치 없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자이며(믿음이 부족하여 비겁하게 행한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며, 흉악한 자들이며(혐오스럽고 진저리나는 사람), 살인자들이며, 행음자들이며, 술객들이며(마술을 사용하는 사람과 마약을 쓰는 사람), 우상 숭배자들이며,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다.(계 21:8, 마 8:12, 13:41,42, 22:13, 23:15, 25:30,33, 눅 13:27, 계 21:27, 22:15 참조)


바울은 이것을 구원에 관한 개인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와 복음을 계속적으로 순종치 아니하는 모든 자라고 요약하고 있다.(살후 1:8)


악한 자의 심판은 끝이 없다.


“근본진리의 선언”에서 주어진 첫 번째 성경 인용문인 마25:46 에서 “영(헬라어, anonion)벌”이라는 구절을 사용하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절대적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영원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러나 같은 구절에서 예수께서 똑같은 말을 “영(헬라어, aionion)생” 이라는 말에서 사용하는데 여기서 이것은 직접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전자와 병행을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 생명이 영원한 것처럼 그 벌도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악인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어떤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마 25:41 에서 그 벌은 “영원한(헬라어, anionion)불”로 정의하고 있다. 


예수께서 악인이 죽은 후에 가는 중간상태를 하나의 불로서 특정짓고 있다. (Hades, hell, 눅 16:23,24) 그러나 이것은 영원히 있을 불과 구분해야 한다. 눅16 장에서 예수의 말씀은 악인이 의식이 있는 상태이며,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영원한 불은 예수께서 게헨나 혹은 “불의 게헨나”라고 부르셨던 것과 같은 것이다.(마

5:22,29,30, 10:28, 18:8,9, 23:15, 막 9:43,45,47, 눅 12:5) 이 불은 영원할 뿐만 아니라 또한 꺼지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이것은 그 불이나 벌이 끝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가르친다. 그 형벌은 불과 마찬가지로 영원하다. 만일에 불이 악인을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라면 불이 영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같은 불을 “풀무불”이라고 말씀하셨는데(마 13:42,50),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가는 비참한 후회는 “멸망의 자식”으로서 영원한 파멸에서 자신을 구하지 못하였다.(요 17:12, 행 1:16-20) 예수께서는 이렇게 울며 이를 가는 것을 “바깥 어두운데서” 일어나는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다.(마 8:12, 22:13, 25:30) 이 어두움은 최종적인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새 예루살렘의 빛이신 어린 양과의 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계 21:23)


또 다른 신약성경 구절은 영원한 벌은 영원한 심판으로 언급한다. 즉 영원토록 유효한 심판이라는 뜻이다.(히 6:2) 여전히 다른 구절은 “침륜”(문자적으로 파괴, 사망, 분리를 의미함) 그리고 “멸망”(영원한 사망) 이라고 말한다.(딤전 6:9) 이러한 “영원한 멸망”(혹은 분리)은 “주님의 존전으로부터” 그리고 “그의 능력의 영광으로부터”의 분리이다.(살후 1:9) 이러한 구절들에서 “사망”이라는 단어는 영

적 사망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 죄인은 현재도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이며, 그리스도와 분리되었거나 그리스도가 없는 자이다. (엡 2:1,12) 영원한 심판은 최종적으로 영원히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분리를 가져오는 것이다. 


둘째사망


성경은 이렇게 최종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둘째사망”이라고 부른다. 요한계시록에서 불못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계 20:14) 예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게헨나)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눅 12:4,5)고 경고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게헨나를 둘째 사망과 동일시하였다. 이것은 확실히 육체적인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 죽음은 상태나 종류에 있어서 판이하게 다르다. 육체적임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죽음이 몸에서와 우리의 생활환경에서의 분리라고 한다면, 둘째 사망은 하나님으로부터와 새 창조에서 맛보게 될 생명으로부터 최종적이고 영원한 분리이다.

이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사람 중에는 짐승의 표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있다. (계 14:9-11) 이 사람들은 천사들과 그리스도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다. 즉 봇물에 갇혀서 새로운 창조물과 격리되어 있지만 나사로가 음부(Hades)와 아브라함 몸 사이에 있는 깊은 구렁을 건너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그들이 거부한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눅 16:23) 그들은 결
코 타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그 고난의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그들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로다.”(계 14:11)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영원히 성도들에게 약속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구절 중 어느 것도 최종적인 심판이 선언된 뒤에 복구시키거나 회복시키는 것을 약속하는 암시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볼못이나 게헨나와 관련하여 신성한 기관은 나타나 있지 않다. 불은 막 9:44,48 의 구더기와 병행하고 있다. 그것은 깨끗한 것으로서가 아니라 형벌로서의 붙인 것이다. 거기에는 또 다른 기회가 없다. 이러한 사실은 교회를 흔들어 깨워“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하며 외치게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고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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