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不姙)

성도들의 대인관계 2018. 12. 26. 02:26

불임(不姙)

(Q 16) 하나님의성회에서는 불임(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부부)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불임을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의학적인 시도가 기독교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입양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불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공 수정 기술의 사용여부에 대하여 하나님의성회는 공식적인 성명은 없지만, 이미 수정된 태아를 의술로써 함부로 변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뜻을 기만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불임은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문제는 인류의 역사처럼 오래된 문제입니다. 성경 시대에 자식이 없는 상태를 “볼모지‘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자식을 못 낳는 것을 사회적인 수치로 여긴 이유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든든한 안전을 제공하고 또한 그 가족의 대와 명예를 계속 이어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연결 고리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미움과 경멸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것은 또한 종종 저주 받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화에서는 아기 없음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반 사회에서는 그들을 통상적인 가정의 범주에서 제외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불임은 아직도 자식이 없는 부모들에게 커다란 짐이 되고 있습니다. 이 짐이 기독교인 

부부들에게 특별히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의 교회가 자녀들과 가정에 대하여 자주 강조를 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갖지 못하는 기독교인 부부들이 그들의 불임의 신체적 원인을 알기 위해 검사를 받거나 의학적인 도움을 통해 다른 옵션을 찾아보는 것이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조처들은 항상 성경적인 윤리에 어긋남이 없이 그들의 삶과 결혼에 대한 하나

님의 뜻 안에서 고려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거나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코스를 항해하는 것은 종종 재난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에는 불임때문에 자식 갖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아브라함과 그의 처 사라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시고 그 자손이 많아져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다리기에 지쳐 그 약속을 의심했습니다. 그들은 자식을 갖기를 결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방법으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상속자 이스마엘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게 만들었습니다 (창 16장).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후에 사라를 통해 이삭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창세기 15:2-5, 21:1-7).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홀히 함으로 인해 그들의 생애속에 많은 좋지않은 결과들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또한 하나님께 치료받고 아기를 갖게 된 다른 불임의 여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즉 한나 (사무엘상 1:20)와 엘리사벳 (누가복음 1:5-25)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여전히 기적을 행하십시다. 아기를 낳기를 원하는 부부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치료를 구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문제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불임을 고쳐주지 않으신다면 부부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식을 주지 않으신데 대해 - 자녀가 있으면 이룰수 없는 - 어떠한 목적을 갖고 계시는지에 대해서 기도하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상당한 시간을 기도해 보아도 하나님께서 자녀

없이 하는 어떤 사역을 하라는 인도하심이 없다면 수술을 하여 막히거나 손상된 나팔관을 고치거나 배란을 자극하도록 (이런 방법으로 신체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조심스럽게 약을 사용하는 것도 가할 것입니다.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 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은 주님께로부터 자식을 주신다는 약속을 받고도 참을 성 있게 기다리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았던 아브라함과 사라의 경우와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부부들은 입양을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으로 봅니다. 불행하게도 입양이 가능한 아이들의 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입양하기를 원하는 자들의 수요에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불임의 윤리적인 문제는 수많은 원치 않는 아이들을 태어나지 못한채 죽이는 낙태문제로 옮아가게 됩니다. 비록 매년 적은 숫자의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은 많은 자녀와 부부들의 필요를 성공적으로 만족시키고 있으며, 기쁘고 사랑스러운 가정들이 대부분 기독교인 부부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입양은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모델로 잘 이해되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아비가 되고 너희는 나의 아들과 딸이 되리라 전능하신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린도전서 6:18). 갈라디아서 4:7은 “너희는 더 이상 종이 아니요 자녀이니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입양은 로마서 8:28의 말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는 최고의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자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뼈저리게 아픈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은 자녀가 없는 부부들의 아픔과 욕구에 대해 예민해야 하며 자식을 낳는 축복을 갖지 못한 그들을 사랑스럽게 인정해주고 돕고 후원하는 일에 신속해야 합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에 큰 기쁨이 있지만 그러나 행복과 평화의 근원이 자녀들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이시고 자녀가 있든지 없든지 그분만이 참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 도다” (시편 113:9). 


관심사:


12가지 이상의 생식 기술들이 현대과학에 의해 제시되고 시험되어져 왔습니다. 그것들 중 많은 것들이 하나님의성회 식구들의 진지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크리스챤 부부의 관점에서 볼 때 결혼의 신성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제 3자가 개입된 모든 시도 (예를 들면, 기증자에 의해 이루어진 인공수정(AID)과 대리 행위)는 차단되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의학 기술자들이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인공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조절되면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는) 현대 의학이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 오만하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결코 그러한 불순종의 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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