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과 도박

현대의 쟁점들 2019. 2. 8. 20:44

복권과 도박 

왜 하나님의 성회는 복권과 다른 종류의 도박에 반대하는가? 


        하나님의 성회는 성경적 관점에 의거하여 도박을 반대합니다.  교회는 도박이 다른 사람의 경비로 이기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인위적이며 고안된 모험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창조적인 노력, 유용한 기술, 혹은 책임을 져야하는 투자” 에 대한 공정한 대가(代價) 없이 행해집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연구해보면 도박은 성경적 원리대로 살기를 원하는 기독교인이 피해야 할 악의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이사야 65:11)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의 영향에 굴복하여 “ 기회” 혹은 “행운”의 이방신들을 숭배한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 숭배를 하면서 살아계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보다는 행운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했습니다.  이사야 12-16절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활동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도박이 일, 청지기 직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도박하는 행위를 더욱 비난합니다.  도박은 “ 무엇을 공짜로 얻으려” 하거나 또는 “빨리 부유해지기” 위하여 성실한 노동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그것은 남자가 그의 생계를 위하여 일해야만 한다는 성경적 원리를 위반하도록 만듭니다.  (잠언 12:11; 28:19,20; 데살로니가전서 3:10을 보십시오.)  기독교인은 사람이 소유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속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시24:1).  달란트 비유(마태복음 25:14-30)에서 예수님은 사람에게 주어진 자원은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믿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도박에 대해 솔직히 평가한다면, 도박을 그와 같은 것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끝으로, 예수님은 사랑이 기독교인을 그의 제자로 표시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요한복음 13:35).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많은 도박에 대한 동기를 유발시키는 탐닉과 중독을 통하여 이익을 얻는 것을 정당화 시킬 수 없습니다. 


관심사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사회 윤리의 상당한 부분이 성경적 권위에 의해서보다는 무엇이 효과를 나타내는가 하는 호소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슬프게도,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개인 생활에서 복권 추첨이나 다른 형태의 도박을 하는 것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기 위해 이와 동일한 합리화를 사용합니다.         


많은 도박 제안자들은 도박이 오락으로 남아 있을 때, 그것은 건전하며 받아 들일 수 있다고 논쟁합니다.  그들은 개인이 보통으로 다른 형태의 오락에 사용하는 소량의 금액을 도박에 사용할 때에는 도박이 부적절하거나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고 합리화합니다.  그러한 도박 제안자들은 보통 “도박을 할 때에 그들은 잃을 것을 기대한다.” 고 합리시킴으로서 그들의 행동을 방어합니다.  그러나 도박에서 이기려면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합니까?  어떤 사람이 이길 때에는 누가 집니 까?  이길 경우에 오락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의 일에 대한 윤리는 무엇입니까?  도박의 금액을 늘이는 유혹 때문에 사람들이 큰 손실과 재정적 파멸에 처해질 때에 누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집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이기는 것은 개인을 더욱 더 도박에 깊이 빠지도록 유혹하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완전히 헤어날 수 없이 중독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중독은 문자 그대로 수천의 개인, 직장, 및 가정에 재정적인 파탄과 파멸을 가져 왔습니다.         


도박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이론적 설명은 수익의 일부분을 좋은 일과 구제 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주리와 같은 주에서는 주에서 후원하는 도박이 도박 수익의 일부분을 주의 공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개선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 하에서 주민 투표에 의해 통과되었습니다.  도박 제안자들은 시민들이 내야하는 세금을 줄인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이론적 설명을 사용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종류의 이유들은 흔히 기독교인들을 잠잠하게 만들며, 그들 자신은 그러한 행운의 도박에 참가하지 않지만, 그와 동시에 그러한 행사에 대해서 항의하지도 않도록 만듭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자세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우리들의 책임과 우리들의 이웃을 사랑하라는 책임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은 도박을 통한 수익의 십일조를 드릴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위와 동일한 좋은 뜻으로 합리화시키려 합 니다.  그러나 질문은 계속 남아있습니다: 죄와 악이 언제 좋은 것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까?  어두움이 언제 빛을 생산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아니오” 라고 말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귈 수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6:14).  야고보서 3:1216의 말씀 역시 적용됩니다.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 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 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위에 기술한 것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이해에 근거한다.  이 위치에 대한 공식적인 기술은 하나님의 성회의 위치를 표방한 “도박에 대한 성서적 고찰”(1993)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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